어디 있는지 기억나세요?
어디 있는지 기억나세요?
  • 류호철 충북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 승인 2023.12.0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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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문화유산 이야기
류호철 충북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류호철 충북문화재연구원 유물관리팀장

 

예전에 할아버지가 쓰시던 반닫이와 괘종시계가 있었다. 반닫이에는 지금은 보기 힘든 옛날 동전, 지폐들과 손때묻은 물건들, 그리고 집안의 족보가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할아버지가 낡은 태엽 괘종시계에 밥을 주시는 동안 나는 반닫이 안의 신기한 물건들을 뒤적거리곤 했다.

언제나 이 물건들을 소중히 관리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할아버지뿐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물건들은 더 이상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가치를 잃고 쓰레기가 되어 버려졌다. 나중에 뒤늦게 어머니한테 그때 괘종시계랑 반닫이 물건들 어디 갔느냐 물었지만 이미 다 없어져 버린 이후였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시골마을에는 소를 키울 때 쓰는 여물통이나 커다란 장독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삶의 양식이 바뀌고 거주공간도 현대화되면서 옛 물건들은 더는 쓸모가 없었다. 새로운 물건들로 집안을 채우면서 돈이 될 만한 것은 고물상이 가져가고 대부분은 쓰레기로 버려졌다. 시대의 변화로 말미암아 옛 물건에 대한 가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지정 문화재의 정기조사하러 다니면서 문화재를 관리하시는 개인소장자 분들이 굉장히 고령이신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개인 소장 문화유산은 대부분 조상과 집안에 관한 기록이 대부분이고, 당장의 자식 세대들은 그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유명 세가의 종중 등 기록의 관리에 노력을 들이는 곳도 있지만, 관리를 하는 분들조차도 이런 노력의 목적과 의미에 회의를 느끼시는 경우도 꽤 있다. 이렇다 보니 지금 관리하고 계신 고령의 소장자가 정확한 인수인계의 과정이 없이, 병석에 들거나 돌아가시게 될 경우, 문화유산들의 소재나 관리주체가 불분명해지거나, 분실까지 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올해 조사에서도 고령이신 소장자가 인지능력과 기억력 등이 저하되어 지정유산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은 일도 있었고, 관리를 인계하고 싶어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거나, 소장자인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생각이 다소 다른 경우도 있어 안타깝기도 했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들에 대한 해법이 있을까. 일단 문화재를 관리하는 소장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직까지 조상이 남긴 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있는 분들에게 무작정 기증, 기탁부터 권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무런 이득도 생기지 않는 일을 자부심만으로 지속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관리보조금 등 비용지원, 가끔 무관심으로 잃어버린 할아버지의 물건들이 생각나 아쉽다.

앞으로도 사회는 점점 더 고령화되어 갈 것이고, 예전처럼 조상들의 유산을 보전하려는 젊은 세대는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 사이에서 함께 사라져 갈지 모를 소중한 유산들의 체계적인 관리, 보전 방안을 마련해 가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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