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3.08.3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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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팔월은 팔월답게 뜨거워야 제 맛이 난다지만 어느 한 날도 망설이거나 순한 얼굴 한번 보이지 않았다. 거칠고 독하기가 팔월 풀쐐기 같았다.

6월부터 지금 8월이 다 가고 처서도 지난 지금쯤이면 힘이 빠질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팔팔하다.

해마다 기온관측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다. 올해도 변함없이 최고다. 올여름 열대야가 한 달은 지속 된 것 같다.

장마, 폭염 어느 것 하나 순하게 지나가는 것이 없다. 여름이 이렇게 거칠고 독해진 건 자연을 거슬린 인간의 무분별한 이기심이 부른 화근이다. 이 여름의 폭력은 참아내기 벅찼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로 부채질을 했다.

이 여름 날씨를 견디면서 폭군 연산군과 기생 장녹수 같다고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했다.

역사에서 파헤쳐진 그들의 행태는 사람으로서 행동할 수 없는 짓을 했다. 자신을 위해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만큼도 여기지 않았다. 그 오만함과 욕망이 끝이 없었다. 장녹수의 치마 깃을 밟아 목이 잘린 여인, 운평 옥지화를 능상 죄로 다스렸다.

장녹수의 요사스러움을 견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영원할 줄 알았던 그들의 사랑과 권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백성의 분노는 들끓었다. 그들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는가. 임금의 자리에서 끌려 내려와 죽임을 당하고 임금의 총애를 등에 업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오만 방자하던 장녹수도 죽어 거적때기 하나 덮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나는 한 번도 권력의 자리, 그 근처도 못 가 봤지만 여러 단체장을 경험했다.

당신의 직위를 이용해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인은 뒤로 물러서 있으면서 주변인들을 빛나게 해주는 단체장이 있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한다. 작은 권력도 권력이라고 그를 이용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

처서가 지났다. 이 막무가내인 여름도 살짝 비켜 앉은듯하다. 그래도 아직은 내놓을 생각이 없는지 오늘도 새벽부터 찜통이다.

마당에 풀 좀 뽑았더니 땀이 줄줄 흐른다. 끌어내릴 수도 없고 눈치만 보고 있다. 어지간하면 다음 계절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할 것 같은데…. 어찌 저리 뻔뻔하고 욕심이 많은지 모르겠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 같아 밉다. 그러면서도 한편 여름이 지나가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또 한 계절이 간다는 안타까움이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의 변이다.

언제까지나 젊고 예쁜 청춘으로 머물러 있을 줄 알았다. 철없는 여름처럼 뜨겁기만 했다. 어리석게도 내 여름은 오래 머물러 있을 줄 알았다. 주변 어른들의 말씀은 귓전으로 들었다. 누구나 젊어 한때는 이 팔월처럼 시고 떫고 건방지다. 인생을 통달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 과정을 생략될 수 있으랴.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때 좀 더 현명하게 살았더라면 지금 이 모습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했으리라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의 시가 생각난다. 사람마다 느끼는 가치관과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살아 숨 쉬고 있는 지금이 절정의 순간이 아닌가 싶다.

여름은, 절정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찰나의 시간이다.

열정의 순간보다는 절정에 이르는 그 시간이 값지다는 것을 위험한 사랑의 계절 여름은 모를 것이다.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는 크지 않다. 여름은 거침없는 계절이다. 위험하지만 그래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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