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만세'의 반납
섣부른 `만세'의 반납
  •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 승인 2023.08.24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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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談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10여 년 전쯤 `주말 부부'가 된 필자는 주변에서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라는 부러움 섞인 농담을 듣곤 했는데 2년 전 자녀까지 직장 생활로 모두 독립하게 되면서 `1인 가구'가 되었다.

좁은 집에 복작거리며 지내다가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사실 속으로 `만세' 부르며,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늘 바쁘고 치열한 삶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용히 차 한잔을 홀로 마시고, 어느 날은 늦도록 침대를 벗 삼아 맘껏 게으름 피우고, 마음을 비울 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상상을 하며 미소 짓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혼자가 되고 보니 일상의 수많은 변화와 불편함이 낯설어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어 그립기도 하였으며, 잠자리에 들 때면 살짝 어색하고 무서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기도 했다.

`식사'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간단히 때울 수 있지?'를 궁리하며 어떤 날은 병뚜껑을 못 열어 불편하고, 어떤 날은 원피스 지퍼를 오르내리기가 불편하고, 어떤 날은 팔찌 고리를 못 채워 씨름한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세탁기도 돌리고 청소도 했는데 이젠 모든 일이 `내 몫'이다.

밤늦게 세탁기를 돌릴 수 없으니 주말에 몰아서 할 수밖에 없고, 배달 음식을 주문하려 해도 1인 메뉴가 아닌 이상 주문하기 부담스럽다. 아플 때는 더욱 서럽다. 특히 갑작스럽게 밤에 아프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얼마 전에는 오른쪽 팔뚝에 화상을 입어 연고를 바르고 방수밴드를 붙이다 보니 반창고가 붙어 있던 자리가 벌겋게 부어올라 피부 발진을 일으켰다. 생각해 낸 것이 방수밴드 대신 거즈를 대고 붕대를 감는 방법이었다.

혼자 거즈를 대고 붕대를 감아 매듭을 짓는 일이 여간 힘들고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입으로 붕대의 한쪽을 물고 한 손으로 붕대를 잡아 돌리며 끙끙거렸지만 결국 허술하고 어정쩡하게 묶이고 말았다.

혼자 사는 일은 참으로 `불편함'이 많아지는 일임을 진작 깨달을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었다. 일상의 삶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모든 것들을 혼자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등을 갈아 끼우는 일도, 샤워기를 바꾸는 일도, 무거운 물건을 다루는 일도 혼자 감당해야 한다. 갑작스럽고 다급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런 불편함은 마음속으로 외쳤던 `만세'를 일찍이 반납해 버리게 했다.

청주시 1인 가구는 2015년 28.8%, 2017년 31%, 2019년 32.9%에서 2022년 3월 현재 41.5%로 수직적 급증을 하고 있다. 청주시 10가구 중 4가구는 1인 가구인 셈이다. 1인 가구의 불편함은 성별과 연령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청주시가족센터에서는 올해 `1인 가구 욕구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심층 인터뷰와 설문 조사를 통해 청주시 1인 가구의 `불편함'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1인 가구들의 안전과 편안함,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을 수 있는 관계 나눔, 일상생활의 소소한 불편함을 해결한 대안, 이웃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 확대, 혼자만의 세계에 있는 분들을 세상과 만나게 할 수 있는 방법, 지역 안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잘 찾아낼 수 있는 길 등을 고민할 계획이다.

손톱 밑 작은 가시 같은 불편함을 덜어 드릴 수 있는 관심과 정성, 대안들을 찾아 이웃과 가족이 되는, 지역이 하나 되는 공동체를 향해 다시금 한 걸음 크게 걸어보려 한다. 1인 가구의 불편함이 조금씩 해소되는 그날까지 멈추지 않는 이웃이 될 것이다. 그 길을 함께 걷는 멋들어진 실천가, 그대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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