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하게 펼쳐진 자연에 자기생각과 감정을 담아 자신만의 특별한 그림세계를 나타냈던 화가가 있다.
화가의 길에 들어선 이후 언제 한번도 붓을 놓지 않았다는 정의부 화백이다. 그는 늘 그림에 감사하는 마음과 작품을 완성하는데 열정을 쏟은 시간으로 행복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증권사 직원으로 잘 살다가 갑자기 그림을 그리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바꾼 그는 어느 날 배가 고파서 만두집 주인에게 사정해 그가 스케치한 작품과 바꿔 먹었다고 한다.
만두집 주인이 그가 준 스케치 작품에 만두를 싸서 주는 것을 보고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했던 추억이 있다고.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에 팔순이 가까워도 길잃은 방랑자 같았지만 붓을 잡고 창작에 매진한다.
어릴 때 학교 미술점수가 잘해야 `미' 정도였고, 미술숙제는 큰 고역이어서 소질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웃에 사는 미술반 반장 집에 놀러 갔다가 흉내만 내곤 했던 게 평생 그의 길이 되었다.
문학도였던 그가 여러 고충을 겪으면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나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내자!'라는 신념과 열정이 훗날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그의 그림 주인공인 철새는 미지의 세계이자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세계가 되었고, 그 속에서 고향과 파라다이스를 찾으며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폈다.
철새가 단순화된 형체와 색채로 정리되고, 새로운 꿈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정의부의 그림세계는 새들의 공간'이 되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다른 세상에 빠져들게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림 속 철새들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기도 하고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장면에선 뛰어난 색감으로 따스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군더더기 없는 작품은 독창적이고 창의적이다.
`바닷가 철새들의 대 퍼레이드', `푸른 창공을 나는 철새들의 꿈' ,`철새들의 행진', `철새들의 회오리', `해오름과 철새들의 합창' 등 수많은 그림에서 철새들의 날아오르고 내리는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다.
캔버스에서 에너지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예술적 완성도는 자연과 어우러진 철새들의 삶을 또 다른 삶을 꿈꾸는 예술로 일구어낸다. 철새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관람자의 몫이다.
화가의 작품 속에서 보고 느낀 것으로 충분하기에 또 다른 무엇을 찾아낸다는 게 무의미하지 않을까.
예술에서 자연은 새로운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이 예술에 중요한 자료가 된 지 오래 되었지만, 작품은 어디까지나 창작자의 주관적 생각과 시선이 담기기 때문이다.
사실적 묘사에 능통한 정의부 화백의 탁월한 예술의 차별성은 국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만나 볼 수 있는 그림과 달리 친근한 색의 대비가 감각적인 붓놀림과 질감의 기본에 충실한 표현이라 평가다. 60여 년 그림 인생을 살아온 한국의 원로 화백이었던 그는 한국의 자연을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철새 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