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헌의 씨앗 한 톨
해마다 피어나는 몇몇 꽃들을 보게 되면 모른 척 지나치지 못한 채, 심한 멀미를 할 때가 있다. 요 몇 년 동안은 패랭이꽃과 지칭개꽃과 수레국화 때문에 그랬다.
어디 어찌 그것들 뿐이겠는가. 메리골드와 채송화와 개양귀비와 수국도 내 마음을 붙잡았고, 송나라의 왕안석이`짙푸른 잎사귀 사이에 피어난 한 송이 붉은 꽃(만록총중홍일점, 萬叢中紅一點)이라고 노래했다는 석류의 꽃밭에서도 발걸음을 서성거렸다.
지난달 이맘때는 참기 힘든 흥취가 일어나서 아예 `수레국화'라는 제목으로 시를 쓰기도 했다. `저 우뚝 솟은/수레국화의 고고한 자태를 보라/파도처럼 넘실거리며/사파이어와 터키석과 아쿠아마린이 생각나는/푸른빛의 영롱함이여/오월의 영토를 차지한 그 신비로운 힘이/인생의 쏜살같은 시간에 사로잡힌 채/정신이 혼미해진 나의 발걸음을/잠시나마 멈추게 한다네/때로는 영욕(榮辱)의 거친 바람에/이리저
리 흔들리다가/몸의 일부가 아프게 떨어져 나가도/타고난 당당함을 잃지 않으면서/행복과 섬세함과 유쾌함을 노래하는/눈부신 수레국화여/움츠렸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고/나는 즐겁게 복종한다네'
수레국화의 꽃말 세 개를 빠짐없이 배치하는 전략까지 쓰긴 했지만, 서투른 솜씨의 시였다. 부끄러움에 낯이 붉어져도 뭐라 할 수 없지만, 이미 엎질러진 고백이었다. 꽃멀미에 흠뻑 취해 세상살이 근심을 잠시나마 잊어보는 것도 당신의 삶을 싹 틔우는 씨앗 한 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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