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 그리고 또 어떤 죽음
어떤 죽음, 그리고 또 어떤 죽음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11.1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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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반백년이 지나도록 손 놓지 못한 죽음이 있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하는 시간이 흐르도록 원통하고 억울한 처지가 지워지지 않는 죽음이 있다.

벌써 50년 전, 11월 13일의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버들다리가 지금도 남아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날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마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몸을 불살랐던 22살 청년 전태일을 모르는 척 할 수는 없다.

6년 5개월 동안 병상에서 생물학적으로만 목숨을 부지하다 지난 달 마침내 이승의 삶과 마침표를 찍은 어떤 죽음이 있다. 살아생전 대한민국 경제의 큰 별로 추앙받던 그의 죽음 뒤로 남겨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말이 서늘한데, 어떤 죽음이든 비통하고 애절하기는 마찬가지다.

남아있는 이들에게 죽음이 남긴 의미는 절대로 같을 수 없다.

“삼성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발전시켰다”(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거나 “손톱만한 반도체 위에 세계를 품으신 세계인”(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등등의 수식어는 죽음을 뒤덮는 영광의 아우라 같은 것. 그러나 제 몸에 스스로 불을 붙이는 고통과 비극으로 숨져 간 약자의 죽음은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그리하여 우리 사회가 잊고 싶은 흔적 같은 것. 그러니 어떤 죽음과 그리고 어떤 죽음은 점점 더 다른 세상으로 저승마저 나누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기록되거나 기억되지 못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리고 때때로 잦은 죽음의 개체가 쌓이고 뭉개져 “손톱만한 반도체 위에 세계를 품으신 세계인”은 비로소 빛을 발하고 있음을 생전의 자본가는 깨우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희생으로 학대받는 사람으로서의 비극이 멈추길 바라며 고통의 길을 기꺼이 선택한 50년 전 전태일에게 아직은 희미하게 의미라도 남아 있음을, 간절하고 치열했던 그의 삶 흔적은 반백년을 그럭저럭 살아온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죽음은 어떤 것이든 당사자이거나 남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 비통한 일이어서, 그 크기와 깊이가 다를 뿐 애도하고 추모하며 길이 기억에 담는 일이겠다.

죽음이라는 것은 그로인해 파생된 기억의 깊이와 무게, 그리고 지워지기까지 시간의 지속성에 따라 세상을 변하게 하거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변곡점이 된다. 이건희의 죽음은 법정의 좁은 울타리를 오락가락하며 바꿀 수 없는 부와 권력, 그리고 지배의 세습으로 이어진다. 그 철옹성의 땅바닥에서 희생된 숱한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은 외면되었고, 존재마저 부정됨으로써 애도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통곡은 여전하다.

22살 어린 나이에 근로기준법 책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사람을 기계처럼 대하는 세상에 저항했던 전태일의 50년 이후 세상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어떤 청년은 이승에서 채우지 못한 곡기로 컵라면을 남긴 채 지하철역에서 죽고, 어떤 청년은 1600℃가 넘겨 끓어오르는 쇳물에 빠져 몸의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갔다.

그리고 기계(AI)가 함부로 불러대는 작업지시에 휘둘려 과로사하는 플랫폼 노동의 새로운 노동학대가 활개를 치고 있으니, 절망과 좌절을 떨치고 불씨가 되리라던 희망은 신화로만 남아있고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사람의 세상은 거꾸로 흐르고 있다.

어떤 삶이든 죽고 싶거나 죽기 위해 시작되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어떤 죽음이든 모든 죽음은 눈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죽음은 죽음으로 군림했던 화려함과 칭송의 찬사를 뒤로하고 한 세대를 마감한다. 그러나 또 어떤 죽음은 `죽어 있음'으로 두고두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유령처럼 세상을 떠돌고 있다.

반백년이 지난 전태일의 죽음을 다시 불러내야 하는 이승의 11월이 잔인하다. 어떤 죽음이든 기억하지 않을 죽음은 없다. 부자의 죽음이든 노동자의 죽음이든, 숭고한 희생이든 건강의 끝이 됐든 죽음으로 화해하기 전에 살아 있음을 평화롭게 하라. 기계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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