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개조론'이 던지는 의문들
'국가개조론'이 던지는 의문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4.06.0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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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보은·옥천·영동>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여권에서는 ‘국가 개조론’이 울려퍼지고 있다. 이 말은 지난달 중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가족들을 면담하면서 처음 언급했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가 대개조 수준으로 우리 사회를 기초부터 다시 세우겠다”고 했다. 이후 국가개조론은 선거 기간 여당의 주요 의제로 등장했고, 이 슬로건이 위력을 발휘했는지는 몰라도 여당은 만족한 결과를 얻었다.

선거 결과에 고무된 여권에서는 경쟁적으로 대통령이 선창했던 ‘국가 개조’를 복창하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은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국가 개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대표는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국가 대개조라는 책무를 이루라는 기회를 주셨다”고 말했다. 총리도 나서 “국가 개조와 공직사회 혁신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자”며 내각을 독려했다.

사실 대통령의 첫 언급때만 해도 세월호 참사를 불러온 적폐와 부조리를 발본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부언한 수사 정도로 읽혀졌다. 그런데 청와대와 여당, 정부까지 나서 이 말을 실체적 담론으로 키워버리자 그 의미와 해석,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우선 국가 전체를 개조한다면 국민까지도 대상이 되는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세월호 참사로 도마에 오른 개조 대상은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와 탐욕한 자본인데 거꾸로 정부가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나선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논리다.

여권에서도 적지않은 반론이 터져나오고 있다.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부가 국가를 개조한다는 것은 완벽한 자기부정’, ‘애매하고 무리한 과제’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청와대에 맞장구를 치는 지도부의 언행에 대해서도 “청와대 대변보다는 여야 정치를 복원하고 대통령의 리더십 변화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는 지적에서 “(당이) 청와대 출장소가 된 것처럼 눈치만 보면 미래가 없다”는 질타까지 이어졌다. 

우선 청와대는 국가 개조론을 명백하게 정의해 이 같은 논란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죄인으로 자처하며 참회와 자책의 시간을 가져온 양식있고 선량한 국민들까지 개조의 대상에 올라야 할 이유는 없다. 이들은 정부에 혁신과 개조를 명령하고 그 과정을 감시하고 질책해야 할 주체가 돼야지 정부가 세운 국가 개조 계획에 따라 자기검열을 하는 객체가 될 이유가 없다.

이 나라가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할 만큼 엉망이라는 전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정·관계의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그나마 양적 성장을 일군 것은 각 분야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수행해온 다수의 건전한 국민들 덕분이다. 해경이 구경만 하는동안 침몰하는 세월호 선체로 다가가 목숨을 건 구조작업을 벌인 어부들의 모습이 이런 현실을 압축한다. 정부가 모든 것을 일시에 바꿀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세월호 대책을 세우는 비상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신설할 행정혁신처와 기존 안전행정부의 업무를 분담하는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며 혼선을 빚었다. 

이미 중반기로 들어서고있는 대통령 임기를 감안하더라도 나라 전체를 일거에 쇄신하겠다는 구상은 무리로 보인다. 국민까지 개조할 것이냐는 부질없는 논쟁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 선택과 집중의 지혜가 절실하다. 관피아 척결이라는 소주제로 돌아가 이번 정권의 목표를 국가 개조의 물꼬를 트는 선에 뒀으면 좋겠다. 그 과제만 해결해도 국민들은 갈채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라를 전신 수술하고 싶다면 폭넓은 사회적 토론과 합의 과정을 거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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