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분노하라
  •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 부장>
  • 승인 2014.05.0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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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 부장>

가슴에 맺힌 피멍이 여전히 지워지지 못하고 있다. 아직 ‘실종’이라는 단어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처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은 물론이고, 노란 리본과 현수막으로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모든 백성들까지도 좀처럼 상처는 지워지지 못하고 있다.

단 한명이라도 살려낼 수 있는 ‘구조’는 고사하고 ‘수색’이라는 행위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이 가여운 정부를 탓할 기력도 별로 남아 있지 못한 상태가 벌써 달을 넘기고 있다.

저 깊고 검은 바닷속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는 모진 나날들. 그 사이 우리는 나라가 이토록 허술하기 짝이 없고, 정부가 이토록 부실한 상태를 드러내고 있음이 부끄럽기 그지없어 이 땅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차라리 괴롭다.

온갖 부정과 부패의 어두운 구석이 도대체 이 지경일 수 있겠는가 하는 장탄식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자꾸만 왜곡되고 가려지는 미디어들의 한심스러움 또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거리에 현수막을 내걸며 ‘미안하다’는 말만으로 한숨을 내쉰다 한들 도대체 달라질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탓을 무기력한 재난관리 시스템이나 정부의 무능, 그리고 탐욕에만 눈이 멀어 고귀한 인간의 생명에는 아랑곳 없는 기업들의 잔인함만을 탓할 일인가. 게다가 속고 속이는 일에 너무도 길들여져서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여야 하는 가에는 아예 무신경한 미디어의 이미지 왜곡 탓으로 돌릴텐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선실에 남아 침몰하는 순간까지도 말을 듣고, 믿음을 의심하지 않은 착한 아이들의 원망 넘치는 참혹함에 도대체 어른인 이 나라 백성 누구 하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두려운 것은 세월호 침몰의 이 깊고 깊은 수렁에서 도대체 이 나라에서 ‘희망’을 찾는 일은 어렵게 됐다는 절망의 목소리가 숨겨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지금 이 지경의 나라 상황에서 ‘선거’에 대해 언급하는 일조차 부질없는 짓이고, 또 혹자에게는 아주 심각한 욕을 들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불과 한달 남짓 남긴 선거와, 그 과정을 거쳐 국민이 국민의 손으로 뽑는 이 땅의 지도자가 세월호 선장과 또 가라앉은 배와 함께 어지럽게 엉켜 있는 부정과 부패, 그리고 무능의 표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면 차라리 끔찍하다.

그동안 우리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그로인해 빚어지는 사는 날과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에 무신경하지는 않았는지, 진실로 분노하고 또 분노해야 한다.

세월호 침몰과 함께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착하고 순진한 우리 백성들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더군다나 좌절감과 항의의 표시로 선거를 포기하거나 기권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그보다 지금 우리의 처지에 울분하며 이제부터라도 제대로의 나라와 정치, 그리고 주민자치를 만들기 위해 분노하는 발걸음을 투표장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그럴듯한 이미지와 포장되는 허울을 과감하게 걷어 젖히고 누가 공약을 잘 지킬 것이고, 누가 진정 사람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인물인가를 꼼꼼히 따져 물어 국민이 무섭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 줘야 한다.

영국의 정치학자 콜린 클라우치는 <포스트 민주주의>라는 책을 통해 “전과 다름없이 선거가 치러지기는 한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정부가 교체되기도 한다. 그러나 선거전이 펼쳐지는 동안 PR전문가로 구성된 경쟁적 선거운동본부가 공적 논쟁을 주도하여, 논쟁은 거의 구경거리로 변질되어 버리며, 전문가들이 미리 선택한 주제들만이 토론될 뿐이다. 거기서 대다수의 시민들은 수동적이고, 말이 없으며, 심지어는 정치에 냉담해 진다. … … 이런 정치 쇼에서 현실정치는 닫힌 문 안에서 선출된 정부와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엘리트들에 의해 이루어 진다.”고 걱정한다.

유엔주재 프랑스 대사를 역임한 사회운동가 스테판 에셀은 말한다. “우리 안에 잠재력이 있고, 우리가 가진 모든 가능성은 아직 고갈되지 않았다”고.

그리고 그는 강조한다. “무엇 때문에 분노합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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