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다
미쳐야 미친다
  •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 승인 2025.03.1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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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전신응시명월 기생수도매화 (前身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이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한 생은 매화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퇴계(退溪) 이황이다. 그는 스스로 수시로 매화를 혹애(酷愛)함을 밝혔다. 거짓 아니었다. 그의 매화에 대한 사랑 그저 그런 사랑이 아니었다. 같이 있지 못하면 참을 수 없고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눈멀고 마는 그런 사랑이었다. 지독한 사랑이었다. 퇴계는 매화를 매형(梅兄)이나 매군(梅君)으로 부르며 인간으로 대접해준 사내다. 일화가 있다. 임종이 그리 멀지 않던 어느 날이었다. 퇴계는 이질로 방안에서 설사를 하게 되자 매형(梅兄)에게 불결하면 내 마음이 편치 못하다는 이유를 들며 옆에 있던 분매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한다. 벽에 똥칠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이렇듯 퇴계에게 매화는 분명 하나의 인격체였다. 매화 보는 전용의자도 직접 만들어 매화와 마주 앉아 술잔 잡아 대작(對酌)했고 시(詩) 읊으며 대화했다. 매화에 관한 시 당연히 많이 썼다. 그 시 100수가 넘는다. 이것을 추려 모아 엮은 책이 매화시첩(梅花詩帖)이다.

“매화분에 물 주거라.” 퇴계선생 생의 마지막 말이다. 이쯤 되면 미친 사랑이다. 조선 선비 퇴계는 매치(梅癡)중의 매치였다.

다음 생은 바라지도 않았다. 한 생 매화 속에서 매화처럼 살다간 이가 있다.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는 편액을 집에 걸고 매화 시가 새겨진 벼루인 매화시경연(梅花詩境硯)에 매화가 그려진 먹인 매화서옥장연(梅花書屋藏烟)을 갈았다. 곱게 간 먹 찍어서 매화를 그리고 매화를 쓰고 매화를 노래했다. 목이 마르면 매화편차(梅花片茶)를 달여 마시며 목을 적시고 가슴을 적시고 세월도 적시다가 졸리면 자신이 그린 매화그림 병풍 사방으로 둘러진 방안에 그대로 누웠다. 또 한명의 매화에 미친 자 그의 이름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이다.

“나는 매화에 대한 편벽(偏僻)이 있다.”

버릇도 버릇 나름이고 병도 병 나름이다. 통제가 되지 않는 버릇(僻)은 분명 병이고 병중에서 불치병이다. 딱히 약도 없다. 조희룡은 자신의 저서 석우망년론(石友忘年錄)에서 매화에 대한 상사병을 순순히 자백했다.

조희룡은 조선 후기 때 사람으로 자는 치운(致雲)이고 호는 우봉(又峰)이고 석감(石憨)이며 철적(鐵笛)이자 호산(壺山)이고 매수(梅叟)다. 화가다.

‘큰 키에 몸은 야위어서 그가 가는 모습은 마치 학이 가을 구름을 타고 펄펄 나는 듯하다.’

서예가 오세창이 자신의 저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서 우봉의 모습을 묘사한 글이다. 키는 큰데 말라서 걸친 옷도 무거워 보였다. 어느 점쟁이는 그런 그가 단명할거라 했다. 그래서 파혼도 당했다. 우봉 스스로도 오래 살지 못할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나이 일흔아홉에 죽었다. 당시로는 장수다.

우봉은 추사 김정희 문하의 사람이다. 추사 보다 세 살 연하였으나 그를 스승으로 깍듯이 모셨다. 추사 제자답게 추사체(秋史體)에도 능했다.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능했는데 그중 화(畵)에 능했다. 난도 잘 쳤고 죽도 잘 쳤고 괴석과 산수와 매(梅)에 능했다. 그중 매에 가장 능했는데 묵매에도 능했고 홍매에도 능했고 백매에도 능했다. 매에 능하고 매에 미쳐서 매몰(梅沒)되서 살았다. 피고 지는 것도 가엽고 서러워 붓 잡아 능히 피웠다.

“장수할 상이 아닌데 늙은 나이 되었고 매화를 사랑하여 백발이 되었네.”

우봉의 말년에 호가 매수(梅叟)다. 그 뜻 풀면 매화늙은이다. 그는 한 평생 매화에 미쳤고 제대로 미쳤고 또 곱게 미쳤다. 우봉의 매(梅)는 오늘도 반개(半開)하고 만개(滿開)하고 낙화(洛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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