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커힐 전시장의 현란한 불빛에 눈이 부시다. 색과 형체를 알 수 없는 오묘한 빛이, 사방에서 쏘아 올리는 수십 대의 빔프로젝터와 대형 스피커에서 흐르는 선율과 함께 돌아가고 있다. 밝음에서 어둠으로 들어서는 순간, 사물의 식별이 어려워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어둠이 걷히고 차츰 색과 형체가 서서히 나타나며 그림의 조각이 맞추어졌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부터 렘브란트de Rembrant, 반고흐Vincent Willem Gogh )까지 26명 네덜란드 거장들의 명화를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장에서 독특한 예술의 세계를 접한다.
프랑스에서 첫선을 보인 몰입형 예술 전시인 “빛의 시어터”는 폐공장이나 폐교 등을 이용하여 전시를 시작한 후, 인구가 급감한 문을 닫은 레 보드 프로방스Les Baux-de-provence 지역의 채석장을 이용, 빛의 채석장을 선보여 관광도시로 되살아났다.
전시장에 익숙해지자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우유를 따르는 소녀’의 영상이 사방화면을 꽉 채운다. 그림에 조예가 없는 내게도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낯설지 않다.
이 그림은 트레이시 슈발리에 소설로도 쓰였고,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다. 소녀의 시선과 표정이 관람자들의 관심을 끄는 그림이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라 불린다니 어찌 보면 소녀의 모습이 모나리자를 닮은 듯도 하다. 선한 눈빛, 늘어진 터번, 허름한 옷과 배치되는 귀걸이와 그녀의 표정이 왠지 애잔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베르메르는 심장발작 후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생전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사후 거장으로 재평가되어 널리 화가의 이름을 알렸다. 상인계층의 일상을 소재로 삼은 그림을 자주 그렸다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우유를 따르는 소녀’는 그의 대표작이다.
화면은 쉬지 않고 빛과 색을 쏟아낸다. 반고흐의 자화상이 비치고 ‘밤의 카페 테라스Cafe Terrace at Night’가 눈에 확 들어온다. 나는 ‘밤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이 된 프랑스의 아를Arles 카페에서 처음으로 고흐의 그림을 사진으로 마주했다. 비록 사진이었지만 설렘과 감동으로 잠시 말을 잃었었다. 노랑과 청색의 대비가 선명한 별이 빛나는 카페의 밤 풍경은 신비로웠고, 별빛이 반짝이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스러워 보였다. 고흐는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하고, 친구도 많지 않아 늘 고독했다고 한다.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고흐가 고독을 이기기 위해 고뇌에 찬 모습이 그림에 어른거렸다. 노란색을 무척이나 좋아한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고 입원했던 병원도 온통 노란색으로 그렸다. ‘아를 병원의 정원’ (지금은 문화센터) 현장을 방문했을 때, 그가 얼마나 노란색을 좋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또한, 별이 빛나는 밤하늘과 노란 태양, 노란 해바라기, 푸른 강을 그림의 소재로 삼은 그가 자연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고흐는 10여 년에 걸쳐 900여 점의 그림과 1,100여 점의 습작을 남겼다. 살아있는 동안 인정받지 못하고 사후에 인정을 받았지만, 그의 그림은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런 미술의 천재가 정신질환을 앓고 자살로 불행한 삶을 마감했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잠시 아를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던 ‘밤의 카페 테라스’와 ‘고흐의 자화상’에 더욱 큰 애정을 품었다.
전시장 사방 벽이 기하학적 무늬로 움직인다.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이다. 색채의 건축가라 불리는 피에트 몬드리안의 격자무늬 작품들이 새뜻하다. 점, 선, 면을 이용한 원색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빨강, 노랑, 파랑, 검정, 흰색의 강렬한 색채로 구성한 추상미술이다. 수직과 수평의 조화, 선과 선의 질서와 역동성이 느껴지고 강렬한 색채에선 삶의 의욕이 생기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 디자인 건축, 추상예술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시장은 곳곳에 편안한 원형의 소파 의자, 누워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카펫을 깔아 가족, 연인들의 휘게hegge 장소로서도 훌륭하다. 도슨트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준 아들 내외 덕분에 빛과 색채의 영상과 멋진 음향이 어우러진 몽환적인 그림에 반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