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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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석범 청주 각리중 교장
  • 승인 2025.03.1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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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신입생 입학식이 화려하다. 낮은 채도의 조명에 16학급 436명의 신입생들이 올망졸망 선배님들이 가지런히 해준 의자에 앉아있다. 가끔 교장과 눈이 마주친 아이들은 어색한지 금세 고개를 돌린다. 설레기도 하고 살짝 두렵기도 하겠다. 이제 초등학생 아이가 아닌 중학생 청소년으로 불리는 시작이니까⋯.

학생자치부 대의원들이 입학식을 진행한다. 시작 멘트도 그렇고 영락없이 학교 축제 때 진행되던 행사다. 흥미롭다. 나도 신입생이다. 각리중학교에 3월1일 자 발령받아 왔으니 우리 1학년 신입생들과 마음이 비슷할 거다.

설렘도 걱정도 기대도⋯더군다나 학교장으로 왔으니, 신입생보다는 조금 더 먹먹할까?

시작과 동시에 5인조 밴드가 등장한다. 베이시스트의 팔이 유난히 길어 보인다. 오른손 튜닝이 제법 여유롭다. 맨 뒤에 자리한 드러머의 스네어 드럼 튜닝 스틱도 경쾌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무대에 자리한 건반 연주자의 모습이 뭔가 골똘하다. 드러머의 스틱 지휘로 연주가 시작된다. 제법이다. 저 무대를 준비하느라 아이들은 또 얼마나 연습의 시간을 반복했을까. 그것만으로도 아름답다.

건반 소리가 특히나 귀에 감긴다. 아마도 피아노 연주를 오래 했던 아이가 아니라면 체질적으로 감각이 있는 거다. 연주가 좋다. 연주에 자신의 언어를 충분히 담는다. 기특한 녀석!

1학년 아이들이 갑자기 술렁인다. 아이들에겐 누가 뭐래도 ‘댄스타임이다’ 각리중 댄스부 등장이다. 세 명의 아이가 몸짓 글르부를 타며 무대에 오른다. “끼약~와호~와~”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관객들은 벌써 정점에 와 있다. 이게 댄스부의 매력 아니던가?

정말 깜짝 놀랐다. 무대 위 2~3명의 춤꾼은 소위 길거리 댄서가 아니다. 이미 프로다운 몸짓을 보인다. ‘허허 저 녀석들~~’ 맞다. 내가 늘 예고에서 보아온 실용댄스전공 아이들의 몸짓이다.

내가 워낙 충북예고에 오래 근무한 이유로 미술 외에도 음악, 무용에 대해 ‘눈팅’을 많이 한 까닭에 나름 보는 눈을 담았다. 근데 저 녀석은 당장 예고 실용무용팀에 넣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무대 위 여러 아이 속에서 유독 그 아이의 동작을 눈에 담는다.

하체가 단단해 어떤 동작에서라도 균형을 유지한다. 상체의 뒤틀림도 하체가 받쳐주지 않으면 춤이 아니다. 그건 그냥 흔드는 거다. 그런데 저 친구는 파워뿐만 아니라 자신이 의도하는 동작에 주춤거림이 없다. 자신감이 있는 거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무용적으로 볼 때, 하체에서 나온다. 본인의 꿈이 무언지 잘 모르겠지만, 원한다면 예고무용부장님께 한번 보여줬으면 좋겠다.

호호호. 신입생 입학식에서 난 미래의 멋진 춤꾼 한 명을 만난 것 같다.

아까부터 내 뒤쪽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거 같더니 커다란 북을 들고 무대에 오른다. ‘난타’ 공연인 듯하다. 참 북이 크다. 종류도 여럿이고⋯ 무대 위와 무대 바로 아래까지 마치 군대 의장대처럼 자리잡는다.

규모가 장난 아니다. 잠시 긴장이 흐르고 베이스 타악의 웅장한 울림이 온 강당에 휘몰아친다. 북소리와 북채의 장단이 기막힌 화음으로 어우러진다. 리듬뿐 아니라 다양한 북과 북채의 놀림에서 오는 음의 높낮이까지. 이건 타악이 아니라 일종의 오케스트라 협연이다.

와~ 정말 대단하다. “각리예술중학교인가?” 혼자 말에 옆에 계시던 운영위원장님도 고개를 끄덕인다. 살짝 불안하고 긴장되었던 내 마음이 확실한 설렘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각리와 이미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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