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릿대 잎차
조릿대 잎차
  • 이연 꽃차소믈리에
  • 승인 2024.03.2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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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이연 꽃차소믈리에
이연 꽃차소믈리에

 

내가 나고 자란 고향 불당골은 대나무가 없는 곳이다. 당연히 대나무와 조릿대에 얽힌 추억이나 이야깃거리가 없다.

지금은 환경이 달라져 뒷동산 어디쯤에는 대나무는 아니더라도 조릿대 정도는 자라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도 눈으로 확인해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꽃차를 배우고 꽃차 이야기를 쓰면서 소재가 분명하고 소재에 얽힌 추억이나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글이 비교적 수월하게 흐른다. 진즉부터 조릿대 차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지만 풀어나갈 자신이 없어 망설이다 이제야 글의 주인공으로 올린다.

나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처음 고혈압 진단을 받았을 때 믿기지 않았다.

나이도 나이지만 진단을 내린 의사도 이상하다 생각할 만큼 그 당시에는 마른 체형이었다. 두세 번 혈압을 재고, 또 재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정밀검사를 마치고 나서야 고혈압약과 떼어낼 수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 후로 한 달에 한 번 정기검진하고 약을 처방받으러 병원을 방문한다.

두 달 전 병원에서의 일이다. 주치의 선생님 늘 하던 대로 혈압을 측정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측정하기 시작했다. “이상하네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수치네요.” 하며 웃었다.

가슴이 덜컥해서 너무 높냐고 했더니 너무나도 정상 수치여서 다시 재 본 거란다. 정상 수치가 이상해서 다시 재볼 만큼 내 혈압은 늘 불안했었다는 말이다. 운동을 많이 하고 식습관을 개선했다고 지레짐작하며, 관리 잘하고 있다는 칭찬까지 덤으로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상시 생활 습관은 그대로인데 나 역시도 지극히 정상이라는 수치가 신기했다.

유리 다관에 조릿대 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푸르게 우러나는 찻물을 바라보며 “참 이상도 하네. 이게 무슨 일이야” 중얼거리며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지난 한 달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특별하게 운동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식습관이 달라진 것도 없었다. 바뀐 것이 있다면 아침마다 남편과 마시던 달콤한 인스턴트커피를 어느 날부터 몸에서 거부해 끊었다는 것, 대신 꽃차를 즐겨 마시고 있다는 것, 정기검진 받으러 병원 갈 즈음에는 풋풋한 풀 내음이 나는 조릿대 차를 즐겨 마셨다는 정도였다.

순간 다관에서 우러나고 있는 조릿대 차에 시선이 멈췄다. 설마 하며 부랴부랴 그동안 공부했던 강의 교재를 펼쳐 효능을 살폈다. 거기에는 조릿대 차에는 클로로필이 풍부하고 혈관 내 유해 한 콜레스테롤과 활성산소를 제거하며,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여 혈전 억제. 고혈압. 중풍. 당뇨 등 성인병을 예방한다고 적혀 있었다. 꽃차를 배울 때 나는 그 효능을 기억하려 애쓰지 않았다.

고백건대 처음에는 꽃차가 가지고 있는 효능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단지 꽃이 좋아서, 내가 애지중지 가꾸던 꽃들이 그냥 시들어 가는 것이 안타까워 배우기 시작했다.

차를 마실 때도 기분에 따라 분위기 위주로 차를 선택했고, 지인들에게 꽃차를 선물할 때도 굳이 효능을 설명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껍데기만 뒤집어쓴 허울뿐인 `한방 꽃차 소믈리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꽃차를 덖고 우려 마시며, 차가 지닌 고유 성분과 효능들을 알아가려 노력하며 부족함을 채워 나가는 중이다.

가끔 꽃차의 효능들을 열거하며 만병통치약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꽃차가 약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내 경험으로는 건강 음료로서의 가치는 탁월하다고 말하고 싶다.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두고 그동안 내가 즐겨 마시는 여러 종류의 꽃차와 조릿대 차 덕분이었다고 감히 말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꽃차를 우리고 마시는 동안에는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온전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이 정도면 꽃차의 역할과 가치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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