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하고 씩씩하게
떳떳하고 씩씩하게
  • 박명자 수필가
  • 승인 2024.03.25 18: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박명자 수필가
박명자 수필가

 

꽃샘추위가 한창이던 날, 친구들과 오대산을 갔다.

월정사에 도착하고 보니 한겨울 은빛 세상이다. 차를 몰아 상원사를 향했다. 제설차가 부려놓은 길가의 눈이 가슴 높이만큼 쌓였다. 우리는 상원사 탐방 분기점에 주차하고 월정사를 향해 선재길로 들어섰다.

눈 덮인 오대산의 삼월, 오대천 푸른 물줄기가 굽이친다.

물은 흘러갈수록 골짝 물이 유입해 더 큰물이 되어 흐른다.

두 물이 처음 만났을 때는 우렁찬 소용돌이를 친다. 두 줄기 물이 만나 하나가 되려니 저들도 몸살을 앓는 것이다. 한바탕 소용돌이를 치더니 물은 어느새 하나가 되어 유유히 흐른다. 그 어떤 모양의 그릇도 거부하지 않고 담기는 물도 이러한데 사람의 만남이야 오죽하랴.

우리도 그랬다. 결혼하기까지 각자의 개성대로 자유롭게 살아왔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이는 분명했지만, 결혼 생활은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야 했다.

아내로, 종갓집 맏며느리로, 그리고 엄마로….

결혼 전에는 외로움이 힘들었다면, 결혼 후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인다역의 자리가 나를 버겁게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남편에게 애먼 소리를 하고, 마음 상한 남편은 밖으로 휭하니 나가버리고, 남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실망은 더욱 컸다.

생활 또한 녹록지 않아 나는 더욱 싫은 소리를 하게 되고, 그리고 마침내는 한바탕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뒤에야 서로의 모난 부분이 깎이고 둥그스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저만치 섶다리가 보인다. 통나무 지주를 세워 그 위에 섶나무 이엉을 깔고 흙을 덮어 만든 다리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태 전 여름에 몸이 아픈 남편과 이곳에 왔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리 위를 오가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동영상을 남기기도 했다. 여름 햇살을 피해 다리를 건너 숲이 우거진 물가로 내려갔다.

편편한 바윗돌에 앉아 희망에 찬 이야기만을 나눴다. 남편이 떠난 지 일 년, 둘이 앉았던 바위를 바라보니 가슴이 스산하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한 해의 삶을 준비하는 나무들을 보면서 내가 걸어온 지난날을 돌아본다.

67년 세월에 어찌 폭신한 눈밭처럼 평화로운 날만 있었겠는가.

이런저런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혼자가 아니라 남편과 함께여서 잘 걸어왔다.

남편과 나도 티격태격 시끄러울 때도 있었지만 마침내 하나의 물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한 마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는 했었다.

남편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했던 걸까. 꽃밭에 물 주느라 물통들 들고 다니는 나를 보고, 호수를 연결해 벽에 고정까지 해 발에 걸리지 않도록 야무지게 해 놓는 등, 집안 여기저기를 미리 손봐 놓았다.

전기가 고장 나면 누구를 부르고, 보일러가 고장 나면 누구를 불러라는 등등의 걱정을 했었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이 시간, 이제 나는 혼자이지만 이전처럼 씩씩하게 걸어가야 한다. 계곡물도 쉬지 않고 흐르고 흘러 강에 이르고, 마침내는 바다에 이르지 않던가.

혼자라고 움츠러들지 않고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그 길에는 두려움이 있는가 하면 불현듯 그리움도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복병처럼 나타날 많은 일이 있겠지만, 남편과 함께한 지난 세월 밑천 삼아 열심히 살 것이다.

떳떳하고 씩씩하게 살다가 내 삶이 다하는 날, 그날 씩씩하게 남편을 만날 수 있도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