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이
해탈이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4.03.2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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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개가 있다. 제주의 특징을 잘 살린 낮은 돌담 위에 올라가 마냥 멍하니 서 있다. 순하디순하게 생긴 백구다. 골목을 들어서면서 있는 단독주택이 녀석이 사는 집이다. 두 해를 지켜보아도 사람들을 향해 짖어대거나 꼬리를 흔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수없이 오간 길인데 주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쩌다 밥을 주거나 아니면 개와 놀아주고 산책을 시키기도 하련만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무심한 주인을 향한 미움이 슬그머니 자리를 잡는다. 나와의 타이밍이 맞지 않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녀석이 안쓰러워 말을 걸어 보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낯선 얼굴이라 짖어대거나 사람을 좋아하는 녀석이라면 꼬리라도 흔들어야 하건만 무반응이다. 사람과의 소통을 끊어버린 것 같다.

개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과 친화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오늘날과 같이 애완동물로서 널리 퍼지게 된 때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인간의 삶과 함께하며 교감을 나누면서 반려동물이 된 개는 몸의 움직임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눈을 깜빡이거나 코를 핥기도 하고 꼬리를 흔든다. 짖는 소리와 배를 보이고 눕는 행동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으르렁거림은 위협표시이고 짖는 것은 경고다. 수평으로 빠르게 꼬리를 흔드는 것은 친숙함을 나타내고 우뚝 서서 꼬리를 들고 천천히 흔들며 접근하는 것은 공격의 표시다.

개는 아주 사교적이고 친근하다. 이처럼 사람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동물이 없다. 그리하여 주인에 대한 편견도 없다. 못생겼다고 가난하다고, 늙었다 하여 편애하지 않는다. 충성심도 강하고 진득하다. 좀처럼 주인을 바꾸지 않는다. 한 주인만 사랑하는 개의 성격은 관계의 지속성과 관련된 세로토닌 유전자 때문이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83년이라고 한다.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고자 가까이 기르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사람과 더불어 산다는 의미다. 반려동물은 사회적 지지망이 없고 외로움에 시달리는 노인들에게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반려동물을 기르면서 16세 미만의 자녀는 생명의 소중함을 느꼈다. 65세 이상 시니어들은 외로움의 감소와 정서안정이 오고 개를 산책하느라 운동량도 늘었다는 것이다. 부부의 경우에는 대화가 늘어 함께하는 시간이 증가했다. 요즘 반려동물과 교감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동물교감 치유가 새롭게 주목받는다. 알츠하이머, 치매, ADHD, 우울증, 심장질환, 뇌성마비 등에서 폭넓게 시도되고 있다.

오늘도 백구는 그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지나가면서 소리를 질러 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어쩌면 도로변 골목길 첫 집이니 지나가는 차마다 반응하고 짖어댔을 터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경계의 표시를 했을 것이다. 긴 세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이제는 지쳐서 도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매일 새벽같이 출타하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저 무표정한 얼굴. 무애자재(無碍自在)의 모습. 모든 고뇌와 번뇌에서 벗어나 편안한 경지에 도달해 보인다. 녀석을 부르는 나만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해탈이'다. 해탈이가 주인을 기다리는 기쁨으로 외롭지 않은 편안한 상태였으면 한다. 부디 담 위에 올라 바라보는 세상이 행복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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