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 개편과 민의 전제
행정구역 개편과 민의 전제
  • 강신욱 증평향토문화연구회 부회장
  • 승인 2024.03.1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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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욱 증평향토문화연구회 부회장
강신욱 증평향토문화연구회 부회장

 

1914년 3월1일 일제의 전국 부·군·면 지방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충북은 18군 199면에서 10군 114면으로 축소했다.

청주군, 문의군, 충주군, 제천군, 청풍군, 보은군, 회인군, 옥천군, 청산군, 영동군, 황간군, 진천군, 괴산군, 연풍군, 청안군, 음성군, 단양군, 영춘군 등 종전 18개 군이 청주군(문의군), 충주군, 제천군(청풍군), 보은군(회인군), 옥천군(청산군), 영동군(황간군), 진천군, 괴산군(연풍군·청안군), 음성군, 단양군(영춘군) 등 10개 군으로 개편했다. 문의·청풍·회인·청산·황간·연풍·청안·영춘 등 8개 군이 사라졌다.

조선총독부령 111호로 공포한 `도의 위치, 관할구역 및 부군의 명칭, 위치, 관할구역' 시행에 따라 충북 행정구역은 이렇게 바뀌었다.

이어 조선총독부 충청북도령 2호 공포로 충북 10개 군의 면 명칭과 구역이 4월 1일부터 시행했다.

일제는 군과 면의 폐치분합으로 군·면의 수를 대폭 줄여 지방 통치 강화와 예산 절감을 꾀했다.

이후 몇 차례 조정을 거쳤지만, 110년 전 충북 행정구역 기틀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 충북 행정구역은 11시군, 153읍면동으로 편제됐다.

최근 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청주지역 한 예비후보가 청주시와 증평군 통합을 공약에 넣었다. 두 지역을 통합해 청주를 특례시(인구 100만 이상)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증평군민은 반발했다. 지역 정서를 무시하고 청주 발전만을 열거한 선거용이라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반응이다.

증평은 1950년대부터 민관 차원에서 군 설치 운동을 전개했다.

1967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충북을 폐지한다는 정부의 행정구역 개편 구상안에 증평군 신설 안도 포함했다.

증평지역 주민들은 이전부터 증평을 생활권으로 하는 주변 지역을 포함해 현재 행정구역의 4배 이상 달하는 면적으로 군 설치를 추진했다.

결국 반세기 만인 2003년 8월 30일 당시 충북에서 12번째 기초지방자치단체로 출범했다. 올해로 군 승격 21년이 된다.

증평은 충북의 다른 시군과는 태생이 사뭇 다르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원 입법 방식으로 자치단체가 됐다. 마을(증평리)에서 면, 읍, 군으로 행정구역이 확장된 지명도 유례가 없다.

지역 주민들이 수십 년간 투쟁해 얻어낸 산물이다.

110년 전 일제의 인위적인 행정구역 통폐합은 지역 정서와 생활권을 무시하면서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60년 전 정부의 충북 폐지 구상은 재정 자립이란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주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행정구역 개편은 정부의 일방적인 주도나 정치권의 포퓰리즘으로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

역사성과 지역 정서, 효율성, 발전 잠재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다뤄야 한다.

여기엔 해당지역 주민들의 필요성과 고민을 전제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제강점기 주민 정서와 생활권, 수계(水系)가 달랐던 괴산과 증평의 인위적인 통합은 지역과 주민 간 갈등과 반목의 역효과를 초래했다.

행정구역 개편 문제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례다.

행정구역은 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주체가 되는 실생활권으로 편제해야 한다. 조선시대 오일장이 그러했듯이.

지금도 많은 지역에서 조선시대 행정구역이 실생활권으로 유효한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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