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이가 찢어지기 전에
가랑이가 찢어지기 전에
  •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 승인 2024.03.17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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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하루가 멀다하고 내 입에서나, 네 입에서나 나오는 말이 있다. 바로 물가가 너무 올라 도대체 살 수가 없다는 한탄이다. 속된 말로 미친년 널 뛰듯이 늘 오락가락하는 기름값을 차치하고도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의식주, 즉 입고 먹고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의 가격이 끝도 없이 위로만 치솟고 있다. 언젠가 마트에 갔다가 정말 두 눈을 의심했다. 내 기억 속에 애호박은 서민들의 된장찌개를 위해 존재하는 듯 늘 990원, 혹여 조금 비싸더라도 천원 내외의 가격을 유지했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찾은 애호박은 애호박이 아닌 금호박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친환경이고 유기농인걸 감안하더라도 애호박 하나 가격이 삼천 원이 육박하다니. 사람이 경제적으로 위기감을 느끼면 가장 먼저 식비를 줄인다던데, 애호박이 살랑살랑 춤을 추던 된장찌개조차도 이제는 사치가 될 것만 같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이렇게 애호박 한 개, 대파 한 단, 쌀 한 포대 가격에 살까 말까를 고민하며 들었다놨다를 반복하는 우리네 삶에 딱 하나는 예외인 듯 여기저기 화려한 인증샷이 쏟아지고 있다. 바로 `여행'이다. 들리는 말로 이제 겨우 3월인데 9월에 해당하는 추석 연휴 기간 비행기표, 기차표, 버스표는 다 매진되었다고 하고 인기 있는 지역은 해외고 국내고 상관없이 숙소 역시 빠르게 예약되고 있다고 한다. 다른 때도 아니고 남들 다 쉬는 이런 연휴에는 가격도 평상시보다 적게는 3배, 많게는 10배 정도 가까이 더 비쌀 텐데 말이다. 물론 내가 내 돈 주고 인생을 즐기겠다는데 보태준 것도 없는 네가 불만이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다. 나는 그저 소위 말하는 성수기와 극성수기에 원하는 곳으로 떠나 잠시나마 힐링할 수 있는 이들이 부러울 뿐이고, 조금 더 나아가 물가는 미친 듯이 오르는데 월급은 항상 제자리걸음이라며 한숨 쉬는 사람 중에 혹여나 그들도 포함되어 있을까, 포함되어 있다면 말과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그 괴리감에 조금의 의문을 느낄 뿐이다.

그런데 어쩌면 나 역시 `그들' 사이에 어설프게 껴 있는 건 아닌가 하고 깨달은 날이 있었다. 새 학기를 맞이해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여기저기서 부득이하게 인건비 및 물가 상승으로 인해 학원비를 올리겠다는 문자가 연달아 도착했고 나도 모르게 정말 단전에서 올린 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지인이 무슨 일이냐며 물어왔다. 그래서 아이가 커갈수록 사교육의 부담이 커진다고 하소연을 했고, 그 지인은 모든 얘기를 다 듣더니 나에게 촌철살인과 같은 말을 던졌다. “남들 하는 거 다 시키려니까, 늘 돈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지, 애들 교육뿐만 아니라 네가 하는 모든 것들을 한 번쯤은 차분하게 생각해 봐, 진짜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불안해서 그러는 건지. 그렇게 정리하다 보면 물가는 올라도 지금처럼 숨이 막히지는 않을 거야” 본능적으로 영어는 해야 하잖아, 예체능도 하나쯤은 가르쳐야하고 등등 자기변명을 열심히 늘어놓았지만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그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고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내 목을 내가 조르고 있었다는 걸.

내가 로또에 당첨되지 않는 한 지금 이 직업을 가지고 퇴직할 때까지 일확천금을 손에 쥘 일은 없을 것이다. 너무도 투명한 봉급표 덕에 지극히 예상되는 나의 소득 안에서 여전히 허덕거리며 초조해하며 살아가겠지. 그럼에도 최소한 일상을 이루고 있는 것들만큼은 너무 많은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도록 내가 지금 열 손가락으로 온 힘을 다해 쥐고 있는 것 중에 `내가 원해서'가 아닌 `남들이 해서'가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찢어지기 전에 돌아볼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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