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대학 졸업 40주년인 늙은 의사인 내가 의사 증원을 반대하는 것은 밥그릇 때문이 아니다. 나는 앞으로 의사보다는 환자할 날이 휠 씬 긴 사람이다. 대한민국 의료 현장을 40년 지켜본 의료인의 충정이다.
내가 의사면허를 딴 1985년은 의사 수가 3만명이 안되었다. 그래도 필수 의료 서로 하려고 줄을 섰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지금 14만명이 넘는데 필수 의료 아무도 안 하려고 한다. 이런데 이게 의대 증원 해서 해결될 문제인가.
우리나라 필수 의료는 의대 입학 정원이 적어서가 아니라 이대 목동 병원 교수들을 구속시키면서 죽였다. 의료 수가로 한 번, 구속으로 두 번 죽인 것이다.
의사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바로 Do no harm이다. 히포크라테스 전집에 나오는 유명한 경구이다. 적어도 해는 입히지 마라, 모르면 건드리지 마라. 이건 의사들에게만 해당 되는 게 아니다
의사를 늘려서 가까운 곳에 병·의원이 있어야 하고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지 진료를 받을 수 있고 5분 진료 아니고 30분 진료를 원한다. 이건 의사를 늘려야 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내는 의료보험료의 10배를 더 내야 하는 것이다.
의사만 보면 미워하는 사람들은 의료비는 의사가 다 가져가는 줄 안다. 의료 수가는 의사 인건비로만들어가는 게 절대 아니다. 의사 인건비도 있지만 간호사, 각종 테크니션들, 행정 직원들, 청소아줌마, 건물 장비 관리하는 기술자들도 있고 인건비 외에 의료기기 구입, 관리비용, 건물 관리, 전기 수도 , 폐기물 수거비, 임대료, 빌린돈 이자 비용 등이 있다.
이것까지 따지면 상급 종합병원에서 의사 인건비는 잘해야 10%도 되지 않는다. 의원급에서는 의료수가 대비 의사 몫이 높긴 하지만 한국 의료비에서 의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3분의 1도 안된다.
정상적인 원가에 포함되어야 할 것들(직원 월급·노동시간) 등을 희생해 가며 허리띠 졸라매고 이면지 써가며 쥐어짜서 수익을 내는 것 아닌가? 의원급에 연월차 제대로 주는 곳 있나? 찾아 보라. 건강 보험 급여액만으로는 적자 나니까 비급여로 벌고 남들 다 노는 토요일도 일하고 하루 100~200명씩 환자를 보고 있다. 살인적인 근무시간 및 환자 수다.
세계에 대한민국 의사만큼 엄청난 노동량을 견디는 나라가 또 있겠는가. 조금 여유 있게 인력 쓰는 지방공사 의료원, 의료보험공단병원, 서울대병원, 공공병원은 세금으로 건물 지어 주는데도 다 적자다 .해마다 꾸준히 흑자내는 병원은 많지 않다.
한국을 의료 천국이라고 한다. 무료, 250원, 1500원 본인부담금으로는 빵집 가는 것보다 병·의원 가는 게 더 쉽다. 건보 재정 파탄 난다. 이는 불필요한 의료 이용에 대한 유인동기가 된다. 적정 수준의 본인부담이 존재해야 의료 시장의 규모 확대를 제어할 수 있다. 고령화시대 더욱 그렇다. 이것을 고쳐야지 의대 증원은 불 난데 기름 붓는 짓이다.
의사는 죽어가는 사람은 살릴 수 있으나 국가는 못 살린다. 국가를 살릴 수 있는 것은 과학기술이다. 우수한 인재들이 골고루 다양한 분야에 일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국가의 미션이기도 하고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서도 정말 중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