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자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4.01.2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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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이제는 살 날이 산 날보다 적게 남았다. 철학으로 밥을 먹고 살았으니 죽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준비해보는 건 모양이 괜찮다. 어떻게 준비할까? 죽음을 고민해본 사람들을 따라 시키는 대로 해보기로 했다.

경전을 읽고 시키는 대로 해보고자 했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데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명확하지 않다. 우리나라 불경은 대체로 한문이 많다. 그런데 한문 번역은 압축되거나 생략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뜻을 스스로 깨치기가 쉽지 않아 스승(사람)에 의존도가 높다. 그래서 전통이 한 번 수립되면 그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중국 선종이나 우리나라의 종통(宗統)이 폐쇄적으로 계승되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은 원전인 빠알리 경전이 한글로 번역도 돼 있고 인터넷에는 영어 번역도 많다. 번역본을 읽고 시키는 대로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를 때가 많다.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내)쉬리라'며 공부 짓고, `신행(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내)쉬리라'며 공부 지으라 한다. 무슨 말이지? 어떻게 하라는 거야? 영어번역을 보면 몸 전체에 대해 민감성을 유지하며 들이(내)쉬는 걸 훈련하라고 한다. 무슨 말이지? 어떻게 하라는 말이지? 이 구절은 한문 경전에서는 번역이 안 돼 있다. 번역마다 다르고 번역문도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전에서 시키는 대로 하려고 했으나 종을 잡을 수 없다.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으니 가만히 앉아서 호흡을 들여다봐도 암중모색, 오리무중이다.

부처는 내가 겪어본 사람 중 가장 명쾌한 사람이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애매모호하게 말했을까? 그렇게 했을 것 같지 않다. 그럼 원어로는 어떻게 말했을까? 부처께서 한 말을 직접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빠알리어를 시작했다. 완전 초보 상태에서 아는 교수의 소개로 둥국대 대학원생들의 빠알리 경전 강독 모임에 참여하여 텍스트를 읽어가고 있다. 초보 수준에서 강독에 보조를 맞추려니 예습복습을 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다. 그냥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7~8개월 장님 문고리 잡기 식으로 따라가다 보니 사전을 참고하면 떠듬떠듬 원전을 읽는다. 예전에 이해가 안 되었던 텍스트를 원전으로 읽어보니 그렇게 명쾌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라는 지를 정말 단순명료하게 말해놓았다. 아직 진도가 안 나가서 먼 나랏일처럼 여겨지는 걸 제외하고 내 수준에 맞는 단계는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명확하게 이해가 된다. 이해가 되니 시키는 그대로 할 수 있고, 따라해 보면 그렇게 쉬울 수가 없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 시간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가야 할 길이 명확하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뭔지 명확하게 알면 두 시간도 편안하게 앉아 있을 수 있다. 시간 가는지 모르니 당연히 즐겁고 재미있다. 하루 단위가 아니라 일주일을 한 주기로 삼아서 장기적으로 공부 플랜이 짜인다.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시키는 대로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고 쉽다. 다만 자기 수준에 맞춰 순서대로 해야 한다. 아직 초보 수준인데 고수들이 하는 일을 하고자 하면 마음만 답답해진다. 처음부터 금강경을 읽고 쳐들어가면 어렵고 힘들고 답답해진다. 그건 공부가 된 사람들이 거의 최종 단계에서 넘어서야 할 담벼락이다. 그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바로 눈앞에 마주한 담을 넘다가 보면 그런 높은 담벼락도 넘어야 할 때가 온다. 물론 그런 때가 평생 안 올 수도 있다.

안 오면 어떻게 하냐고? 그게 내 팔자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내가 이 생에서 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준비는 여기까지이고 아직 닦이지 않은 업보를 받아 태어나 다시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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