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항
주문진항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4.01.25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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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바다라는 단어, 낭만의 대명사처럼 느껴진다. 짙푸른 바다색,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길고긴 해변 어느 것 하나 거부감 없이 아름답다.

산골에 사는 사람들에게 1월은 가장 한가한 시간이 주어진다. 고인 물처럼 지루한 일상이 길어지면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을 때가 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색다른 먹거리와 바다의 알싸한 바람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주문진항에는 조업을 마치고 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나보다. 양미리가 그물을 찢을 듯 엄청난 양을 잡아 항구로 들어온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위가 눌린다.

그물 한 개가 잡아 올린 양이 동산만하다. 양미리어선이 들어오는 길목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물에 박혀있는 그 많은 양미리를 하나하나 손으로 떼어내야 양미리를 먹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물에 사람이 바글 바글 모인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눌린다. 나는 양미리의 맛이 느껴지기 보다는 이 찬바람을 맞으며 그물에 매달려 일하는 아낙들의 손이 먼저 보인다. 온몸을 아무리 칭칭 동여매도 이 겨울 찬바람의 공격을 막을 수는 없다. 견딜 수밖에 없는 생존의 시간을 보내야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무엇 하나 얻을 수없는 것이 어촌과 농촌생활이다, 민낯을 스치는 주문진항 바닷바람이 냉랭하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바다가 내어주는 식량이 얼마인가. 우리들의 식탁에는 끼니때마다 적어도 김 한 조각 또는 생선 반 토막이라도 올리고 있다. 김 한 장 생선 한 토막을 우리는 쉽게 먹지만 파도와 바람과 날씨와의 사투를 벌여야 우리식탁에 오르는 것이다.

바다, 그 무한의 세계, 지구표면의 70.8%를 차지하며 면적은 3억 6100만㎢에 이른단다. 바다가 얼마나 큰지 가늠 할 수가 없다. 어디에서 바라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산이 좋으냐, 바다가 좋으냐 묻는다. 바다는 바다 나름대로 좋고 산은 산대로 좋은데 어쩌라는 것인가. 굳이 더 좋은 곳을 꼽아야하는가.

수많은 문학작품과 음악, 미술작품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책은 읽어 보지 않았어도 영화는 보았을 것이고 그도 아니면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제목일 것이다.

바다가 작가의 눈으로 들어와 작품을 쓰게 했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바다에서 커다란 청새치를 잡아서 육지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 단편소설, 20세기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소설로 꼽힌다. 이 작품은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에 파도치게 했다.

바다는 해산물만 키워 내는 것이 아니다. 문학을 키워내고 음악을 만들었고 그림을 탄생시킨다. 바다는 예술과 먹거리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정서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바다는 아무 말 없이 거기 그 자리에 있지만 우리는 바다를 만나러 달려간다. 바라만 봐도 그 위엄에 겸손해진다.

주문진에서 점심을 먹고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길고긴 해변 길을 걸었다.

농촌에는 농한기가 있다. 농한기에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 거친 바닷바람, 그 알큰한 바람에 생기를 얻었다. 어촌은 어한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늘 분주 해 보인다.

항구는 낭만이라기보다 생존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산더미 같이 쌓인 주문진항의 양미리떼, 바다는 낭만의 대명사로 생각했던 내 생각이 어긋났던 장면이다.

주문항에 잡아 올린 양미리떼를 보면서 노인과 바다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잡아온 대가리와 뼈만 남은 청새치가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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