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의 가치
태어남의 가치
  • 박종선 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 승인 2024.01.0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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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문화유산 이야기
박종선 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박종선 충북문화재연구원 기획연구팀장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배우 김혜자는 이런 대사를 남겼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살 가치가 있다. 저출산에 따른 지방소멸의 문제를 겪는 현 대한민국의 실정에 최우선적으로 바꿔나가야 할 건 모든 삶은 가치가 있다는, 부자이던 가난한 사람이던, 많이 배웠든 배우지 못했든, 남자든 여자든, 태어난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인식이 보편화 되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태어남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중세 유럽에서 아동이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하고 많은 괄시를 받았던 것에 비교해서 우리나라는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성인이 되는 순간까지 한 아이가 성숙해 가는 모든 과정을 귀히 여겼다. 서양 대부분 나라가 태어난 시점부터 나이를 매기는 데 반해 모태에 있던 10개월의 순간까지 포함해서 나이를 매기는 우리나라의 셈법은 출산을 귀히 여기는 우리의 전통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충북이 출생아 수 증가율이 전국 1위를 기록하였다. 다양한 정책과 여러 사람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청년들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저변을 잘 확보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출산 관련 정책의 개발은 지속적으로 필요하고 잘 수행해 나갈 거란 사실은 믿어 의심치 않다. 다만 정책뿐만 아니라 출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노력 또한 필요할 때이지 않은가 싶다.

충북은 우리나라 출산문화를 상징하는 다양한 유산이 남아 있는 곳이다. 조선시대 왕을 비롯한 왕실에서 태어난 아기씨들의 태를 봉안한 태실은 풍수지리적으로 길지에 조성되어 분포되어 있는데 충북에는 충주의 경종태실, 청주의 영조태실, 보은의 순조태실 등 3건의 가봉태실과 인성군(선조, 정빈민씨 장남), 낙선군(인조, 귀인조씨 2남), 화길옹주(영주, 숙의문씨 차녀) 등 3건의 태실이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태실로 여겨지는 삼국시대 김유신 장군의 태실(사적)이 진천에 남아 있어 우리나라 태실 문화의 중심이 충북이라 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싶다. 왕실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태를 귀하게 다루고 처리하였는데, 자른 태를 짚이나 종이에 싸서 작은 단지에 넣어 땅에 매장하거나, 물에 띄워 버리는 방법, 불에 태워버리는 방법 등을 이용하였고 그 풍속은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도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임산부 태교법이자 교습서인 『태교신기』는 1800년 사주당 이씨(師朱堂 李氏) 저술한 것으로 1801년 아들인 한글학자 유희가 한글로 음을 달아 놓았다. 사주당 이씨는 1739년(영조 15년) 청주 지동마을에서 태어난 청주 출신으로 청주시에서는 사주당 이씨와 『태교신기』를 콘텐츠로 한 “태교랜드”를 초정 쪽에 조성할 예정이다.

이처럼 충북에는 출산과 태와 관련된 다양한 유산들이 남아있다. 이 유산들은 그동안 비교적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그 가치를 입증받았다. 하지만 민간에서 다뤄지는 출산과 태와 관련된 민속분야 연구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다. 전통적으로 우리 조상이 어떤 식으로 태와 출산에 대해서 생각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된다면 `태어남의 가치'에 대한 본질적인 답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출산율 1위 충북의 가치가 우리나라 전역으로 퍼지려면 무엇보다 `태어남의 가치'에 대한 인식부터 우리들 내부에서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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