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과 순간의 미소
영원과 순간의 미소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3.12.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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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사유의 여정을 떠나보시기 바랍니다란 문구에 발길이 절로 사유의 방으로 향한다. 어두운 통로를 따라 걷다 보니 왼쪽 벽면에 영상이 나타난다. 영상은 우주의 만물이 윤회하는 내용이다. 물이 기체가 되고 다시 고체가 되고 고체가 다시 녹아 물이 되는 순환 과정을 통해 수증기가 우주의 기체처럼 고체로 얼음 알갱이가 얼었을 때 하나하나가 우주의 별처럼 보이는 흑백 영상이 반복적으로 상영되고 있다.

영상을 보면서 어두운 통로를 지나자 넓은 공간에 추상적 천장 아래 타원형의 진열대 위에 두 점의 금동 반가사유상이 은은하게 빛난다.

반가는 한쪽 발을 다른 쪽 다른 쪽 다리에 올려놓은 자세다. 사유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깊은 생각을 하는 상태다. 두 점의 금동 반가사유상의 차이점은 두상과, 옷차림, 체형, 완성도, 미소 등 멀리서 보면 비슷하지만 비슷한 듯 다른 불상이다.

왼쪽의 불상이 국보 78호다. 두상에 화려한 왕관을 한 불상은 연꽃에 발을 얹고 있는 모양과 주름진 옷의 표현이 섬세하고 정교하다. 예리하면서 장식적이고 기교적인 조형미를 보여준다. 평온하게 사유하며 기다림의 조바심이나 서두르는 마음 없이 여유의 미소를 띠고 있다.

오른쪽의 불상이 국보 83호다. 오른쪽 무릎이 힘 있게 솟아오른 부분에는 옷 주름이 생략되어 불상 전체에 강한 생동감을 준다. 간소하고 자연스러운 조형미를 통하여 생동감을 준다. 긴 기다림을 마치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챈 듯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사유의 방에 안치된 금동 반가사유상은 360도 돌아가면서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천 년 전 만들어진 예술작품 금동 반가사유상을 감상하면서 로뎅이 조각한 `생각하는 사람'과 레오나르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가 떠올랐다.

세상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람'과 `모나리자'의 예술작품에 열광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고 그렸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의 미소보다 더 경이롭고 아름다운 미소가 `반가사유상'의 미소다. `생각하는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고뇌한다. 지옥의 문 중앙에 있는 인물로 지옥에 자신의 몸을 던지기 전에 심각하게 고뇌에 빠져 있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금동 반가사유상'의 모습은 고뇌를 넘어서 행복하고 평화롭다. 인간 존재의 가장 청정하고 가장 원만하며 가장 영원한 모습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금동 반가사유상은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었으며 어느 장소에서 발견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작가 미상과 종교적 편견에 의해 저평가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나마 두 점의 금동 반가사유상의 소장 기록을 알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다.

사유의 방에 모셔진 국보 78호 금동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영원의 미소다. 국보 83호 금동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순간의 미소라 한다. 미소는 소리 없이 빙긋 웃는 웃음이다. 모든 미소는 보는 사람을 기쁘게 할 뿐 아니라 그 미소를 짓는 사람 자신도 행복하다. 미소를 억지로 지으려고 하면 어색하다. 잘못 지으면 비웃음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살포시 입가에 떠오르는 웃음이 미소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가 진정한 미소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서 영원과 순간의 미소를 보며 지그시 눈을 감고 입가를 실룩인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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