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흐름은 일정하고 연속적이라서 끊어지지도 되돌려지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햇수 내지는 연도 개념은 편의적으로 형성된 것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바탕으로 세월을 구분 짓는 데 익숙해 있다.
그래서 한 해가 오고 가고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끝도 시작도 없는 세월을 한 해 단위로 잘라 인식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새해가 시작되는가 하면 한 해가 저물어 가기도 한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고 느끼는 시기에 나이 든 사람들은 이런저런 시름에 빠지곤 하는데 육조(六朝) 시기 송(宋)의 사령운(謝靈運)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모(歲暮)
殷憂不能寐(은우불능매) 깊은 시름 겨워 잠들 수 없고
苦此夜難頹(고차야난퇴) 이를 괴로워하여 밤을 지나기 어렵네
明月照積雪(명월조적설) 밝은 달은 쌓인 눈을 비추고
朔風勁且哀(삭풍경차애) 삭풍은 매섭고 처량하네
運往無淹物(운왕무엄물) 사계절의 운행은 머물러 있지를 않으니
年逝覺已催(년서각이최) 이 해도 서둘러 지나가는구나
시인은 깊어진 시름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시름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고통의 크기는 잠자리에 누워서 밤을 지새기 어려울 만큼 크다.
그래서 시인은 방을 나서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겨울 밤 바깥의 풍광은 밝은 달과 매섭고 처량한 찬바람으로 대변된다.
달이 다시 밝아진 것이나 바람이 매서워진 것은 다 세월의 흐름 때문이다. 여기서 시인이 잠 못 든 이유가 밝혀진다.
시인은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근심했던 것인데, 한 해가 저무는 밤이니 그 고통이 극에 달했던 것이다.
열두 장의 달력이 달랑 한 장만을 남긴 십이월이 되면,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피부로 느끼게 마련이다.
세월의 흐름은 곧 자신의 늙음이다. 거역할 수 없는 나이 듦에 사람들은 절망하고 체념한다.
이럴 때 방 안에서 시름에 젖어 있는 것은 큰 고통이다. 특히 밤이 그러하다.
춥고 어둡지만 과감히 밖으로 나와서 자연의 묵묵한 흐름을 보면,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삼라만상을 만날 수 있고, 이에서 큰 위안과 늙음에 대한 달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