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집
주인 없는 집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3.11.20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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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사람이 모여서 어울려 사는 공간이 세속이다. 세속에 살다 보면 사람들은 타인을 의식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위선이나 허영 같은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자신의 본모습을 잃고 사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부질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다. 당(唐)의 시인 가도(賈島)는 세속을 떠났을 때 얻는 여유와 자유를 시로 묘사하였다.

주인 없는 집(訪道者不遇)

松下問童子(송하문동자)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물으니
言師採藥去(언사채약거) 스승은 약초 캐러 가셨다 하네
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이 산속 어디인가 있기는 하겠지만
雲深不知處(운심부지처) 구름이 깊어 장소를 알 수가 없네

산속으로 시인이 간 것은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 지인은 도(道)를 닦기 위해 산 중에서 기거하는 도자(道者)였다.

속세를 떠나 산속에 기거하는 지인을 만나러 간 시인도 속세를 떠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만나러 가는 행위도 미리 약속을 잡거나 하는 등의 세속적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시인은 아무런 세속적 타산 없이 내키는 대로 도자인 지인을 찾은 것이고, 도자 또한 시인이 찾아오는 것에 대한 어떠한 세속적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올지 안 올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는 상태이다.

시인 도자를 찾으러 간 것도 세속을 떠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 실제로 도자를 만나기 위함은 아니었다. 마침 있으면 만나고, 없으면 안 만나면 될 일이다.

실제로 시인이 도자의 거처에 당도해 보니, 집은 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시인은 그냥 도자의 집을 나서는데, 여기에 어떠한 낙심도 보이지 않는다. 없으면 없는 대로 세속을 떠나고자 한 시인의 의도는 충족되었기 때문이리라. 집 근처 소나무 아래서 도자의 시중을 드는 동자를 보게 되자, 시인은 도자가 어디 갔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이 물음도 도자를 꼭 찾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의례적인 물음일 뿐이었다. 동자의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약초를 캐러 갔는데 산속 깊이 들어가서 그 장소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세속을 떠났는데 한 번 더 세속을 떠난 이미지를 만들어 낸 시인의 솜씨가 탁월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태어나 사회의 일원이 된 순간부터 다양한 세속적 이해관계에 얽히기 마련이다.

끝없는 경쟁과 무한대로 반복되는 이해타산 속에 묻혀 살다 보면 삶의 본질을 망각하기 쉽다. 이럴 때 홀연 아무런 계산 없이 산속에서 홀로 사는 지인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약이 될 수 있다. 세속에 찌든 삶을 치유하는 것은 세속을 떠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됨을 알아야 한다.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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