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마음으로 본다
고요, 마음으로 본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3.11.1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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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멀리 매름산 중턱에 뽀얀 안개가 이스트처럼 몽글몽글 피어오르며 파도를 친다. 비 내리는 아침이 아니라면 산불이 잦아들 무렵 연기가 번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 풍경에서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떠올린 것도 내 안에 자리한 응고된 편견 때문이다. 때로 기존의 앎이란 것은 우리 뇌의 확장을 방해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눈은 정확한가? 같은 곳을 보고도 서로 다른 상을 말하고 정반대의 느낌을 말하니 누적된 고정관념과 경험치라는 개인 편차 때문이다.

최근 고 이건희 회장 기증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 다녀왔다. 교과서에서 본 익숙한 작품들이 많이 보여 반가웠다. 특히 국보 제216호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1751년 영조 때 제작된 작품으로 비 온 뒤 안개에 쌓인 인왕산의 몽환적인 풍경이 피안의 세계처럼 펼쳐있다. 조선 후기, 대부분의 산수화는 중국의 그림들을 모방해서 그렸는데 이 작품은 정선이 인왕산을 직접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이다.

`인왕제색도'는 얼핏 보면 호랑이가 서쪽을 향해 머리를 두고 살짝 엎드린 채 기와집을 호위하는 형상이다. 맨 왼쪽 `범바위' 부분은 머리이고 `수성동 계곡'은 목덜미며 `코끼리바위'나 `치마바위'는 몸통, `부침바위'와 `기차바위'는 솟아오른 등줄기며 오른쪽 끝으로 뭉툭하니 잘린 부분은 꼬리처럼 보인다.

그 아래 운무 짙게 드리운 조선소나무 사이로 기와집 한 채가 고즈넉이 들어선 모습은 마치 노론·소론의 정쟁을 피해 산속에서 은거하는 기개 곧은 선비의 글방 같다.

오주석은 `한국의 美 특강'에서 선인들의 그림을 잘 감상하려면,

첫째,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둘째,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감상자의 위치는 회화 작품 크기의 대각선을 그었을 때, 대략 그 대각선만큼 떨어져서 보는 게 적당하다고 했다. 동양화는 그림의 대각선 길이 1~1.5배 거리에서 천천히 오른쪽에서 왼쪽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 보아야 그림의 여백미나 구도 등의 조화로움을 알 수 있고 반대로 서양화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보아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우뚝 선 치마바위를 보노라니 중종의 조강지처 단경왕후가 떠오른다. 연산군의 매부인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중종반정 공신들에게 쫓겨나 폐서인으로 살 때 궁궐에서 잘 보이는 쪽에 치마를 걸어두었다는 야사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권 계수한 졸렬한 정치판 놀음에 애먼 사람만 죽어나가고 정직한 백성들 등골만 휜다.

뒤를 잇는 관람객이 많아 자리를 뜨고 나오는데 조선백자 `달항아리'가 보름달처럼 휘영하다.

항아리 중간 가로 부분이 투박한 띠를 두른 듯 정교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에서 어수룩할 정도로 소박한 옛 선조들의 검소한 정신을 읽는다.

꾸밈없이 소소한 도자기들은 순수하고 해맑은 조선 민중의 청빈한 삶 그대로다. 성리학이 국시였던 조선시대, 그 기저가 민본이었음을 확인한다.

오늘날 달항아리는 더욱 깊은 마음으로 보아야 할 작품 중 하나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조선 백성의 밝고 순수한 정신이 그대로 깃든 까닭이다. 조선백자 그 단아한 고요, 그 웅숭깊은 원형에서 잘 뜸이 든 음양의 기운들이 각진 것과 날 선 것들을 휘돌려 하나로 봉합하는 의미를 띤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올려다본 하늘이 마치 달항아리 같던 날, 그 안에 깃든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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