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 앞 감국화에게
뜰 앞 감국화에게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3.11.06 1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늦가을이면 마당 앞에 흔히 보이는 것이 노란빛을 띤 감국화이다. 계절은 한 해의 끝을 향해 다가가는데, 감국화는 마치 초봄을 맞기라도 한 듯, 청초하고도 여린 모습을 뽐낸다. 당(唐)의 시인 두보(杜甫)는 자신의 거처 뜰 앞에 핀 감국화를 보고 세월을 탄식한 적이 있다.

뜰 앞 감국화에게(歎庭前甘菊花)

簷前甘菊移時晩(첨전감국이시만) 처마 앞 감국은 옮긴 때가 늦어서
靑蘂重陽不堪摘(청예중양불감적) 푸른 꽃봉우리 중양절에도 따지 못하겠네
明日蕭條盡醉醒(명일소조진취성) 내일 쓸쓸히 취기가 사라지고 정신이 들면
殘花爛熳開何益(잔화난만개하익) 나머지 꽃이 흐드러지게 핀들 무슨 소용 있으랴
籬邊野外多衆芳(리변야외다중방) 울타리 가장자리 들녘 밖에 여러꽃들 많아도
采擷細瑣升中堂(채힐세쇄승중당) 가늘고 잔 꽃을 꺾어 대청으로 오르네
念玆空長大枝葉(염자공장대지엽) 이것들은 공연히 잎과 가지가 크게 자랐는데
結根失所纏風霜(결근실소전풍상) 뿌리 박을 곳을 잃어 풍상에 얽힐 것이 걱정되어서라네

감국은 관상용으로 뜰 안에 심어 가꾸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인도 가을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뜰 앞에 감국을 심었는데, 어쩌다 옮겨 심는 것을 깜빡하고 있다가 늦게서야 옮겨 놓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꽃이 한창 필 때인 음력 구월 구일 즉 중양절이 되었는데도 파란 꽃봉우리가 맺히지 않았다.

시인은 내심 중양절에 꽃봉우리를 딸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기대가 무너져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인은 이 날 흩어진 가족과 떠나온 고향을 그리며 술을 마시고 감국화를 딸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날 마신 술이 다 깨어 맨정신이 돌아온 다음 날 나머지 꽃이 핀들 무슨 이익이 있단 말인가?

시인은 개탄치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집 울타리를 벗어나 들판에 가면 많은 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아끼는 꽃은 뜰 앞에 심어 놓은 감국화 뿐이다. 비록 가늘고 부서져 부실한 상태지만서도 말이다.

그래서 그것들을 대청으로 옮겨 더 키우려 했다. 일단 옮기긴 했는데 걱정이 또 하나 생겼다. 잎과 가지는 크게 자라는데 그것을 받쳐 줄 뿌리가 박을 곳을 찾지 못해 서리에 얽히면 어찌한단 말인가? 시인의 감국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찬 바람 불고 낙엽이 지는 늦가을은 누구나 쓸쓸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때 앳된 모습의 꽃을 맺는 늦가을의 꽃 감국을 뜰 앞에 심어 가꾼다면 큰 위안이 될 것이다. 무언가를 마음을 주어 아끼는 행위야말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 주는 명약이 아니던가?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