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기억,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세계의 기억,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서준수 유네스코국가기록유산센터 전문관
  • 승인 2023.11.0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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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서준수 유네스코국가기록유산센터 전문관
서준수 유네스코국가기록유산센터 전문관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인 1610년에는 인류 역사에 기념비적인 두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천체 망원경의 성능을 개선하여 목성 주변을 돌고 있는 4개의 위성을 발견한 사건이다. 이 발견은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는 지구중심설이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고, 아이작 뉴턴을 비롯한 후세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불굴의 용기가 되었다.

1610년의 또 다른 인류사의 중요한 등장은 바로 동양의 한 의서였다. 조선 광해군 2년인 이 시기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의 탄생은 1592년 시작되고 이후 동양 역사의 판도를 바꾼 동아시아 국제전쟁(임진왜란)이라는 재난과도 같은 상황에서 어렵게 나타났다. 1596년 선조 임금이 지시하여 허준은 혼자서 수백 권의 서적을 참고하여 당대의 모든 병증에 관한 이론과 처방을 정리해 냈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한의학의 교과서로 임상에 활용되고 있다.

동의보감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동의보감이라는 기록물의 `세계적 중요성'이 의학에 관한 체계적 지식이나 허준 개인의 위대한 기여에만 한정되어 있다면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가 주목한 동의보감의 가치는 `공공의료'에 있었다. 왕명에 의해 의서 편찬에 돌입하여, 완성 후 이 책을 바탕으로 많은 의술이 이루어졌다.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건강과 복지를 책임진 것이다.

전 세계가 함께 노력하여 달성해야 할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SDGs) 3번 `건강과 웰빙'이라는 핵심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동의보감은 지금까지도 모든 인류에게 차별 없는 의료 접근성을 이루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라는 세계 보편적 가치를 최초로 제시한 기록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업의 목표는 세 가지이다. 인류 문명의 발전을 증명하는 중요한 기록들이 상실되지 않도록 보존, 보호하는 것, 기록물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것, 그리고 기록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다.

서양에서 금속활자로 출간된 구텐베르크 성경은 서적의 생산을 촉발해 지식의 대중화를 가져왔다. 기록을 특수한 계층만이 볼 수 있었던 시대에는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것이 독점되었으며 오늘날 서양에서는 `암흑의 시대'라 부른다. 폐쇄적이고 무지로 인한 공포가 지배하던 시대에서 개방적이고 수많은 깨달음과 발견으로 인한 희망의 시대로 나아간 근대 서양의 경험은 지식의 보편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이 남긴 기록을 다시 널리 퍼뜨리는 재생산의 행위를 통해 눈부신 발전과 계몽의 시대로 나아간 지식의 대중적 경험은 민주주의, 인권, 평화, 번영, 공존 등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보편적 가치를 위한 이상과 실현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업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인류가 남긴 기록이 필수적이란 신념을 가지고 있다. 등재된 세계기록유산을 지구촌의 모두가 만나볼 수 있도록, 구텐베르크 성경보다도 더 이른 시기 금속활자를 통해 책을 만들어 낸 최초의 기록물로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 또는 직지심체요절)이 탄생한 대한민국 청주에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가 설립되었다.

2023년 현재까지 등재된 496점의 기록에 담긴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으로의 시대를 넘나드는 여행을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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