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이세 홍익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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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3.10.0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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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노자를 시조로 하는 도교의 핵심 경전인 도덕경 제 56장에는 “塞其兌(색기태) 閉其門(폐기문) 挫其銳(좌기예) 解其紛(해기분)”란 구절이 나온다. “그 구멍을 막고 그 문을 닫으며 그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어지럽게 얽힌 것을 푼다.”는 의미다. 兌(태)는 기쁠 열로도 쓰이지만 여기서는 구멍 태로 보면 되고 구멍과 문을 닫는 것을 불교적 가르침으로 설명해본다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즉, 눈 귀 코 혀 몸 의식 등 육근(六根)을 단속하여 바깥의 대상 경계로 향하는 마음을 쉬고 또 쉬라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기독교는 도둑이 드는 여섯 창문을 잘 지키는 파수꾼이 되라고 말한다. 유교는 대학을 통해 知止而后有定(지지이후유정) 즉, 그침을 안 연후에 안정이 찾아온다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불편-불안하게 하는 이런저런 습관적 생각과 말과 행동을 멈추고 그치는 계율을 철저하게 잘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다.

눈 귀 코 혀 몸 의식 등을 통해 접하게 되는 바깥 대상 경계가 마음을 불편케 하고 갈등하게 한다면 잠시라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마음을 0점 조정함으로써 고요하고 편안한 `나 없음'의 무아(無我)나 갓난아기 같은 순수 의식의 심령이 가난한 상태를 회복하면 된다. 현대인들에게 다소 익숙한 명상도 결국엔 생각과 감정을 쉬고 또 쉼으로써 들뜨고 흩어지고 탁해진 마음을 가라앉히고 모으고 맑혀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명상 과정을 노자는 구멍과 문을 닫고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어지럽게 얽힌 것을 풀라는 가르침을 통해 마음의 고요와 평온을 회복하라고 주문했음을 알 수 있다. 여자가 시집을 가서 새로운 집안의 가풍에 적응하기 전까지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의 세월을 보내라는 우리 속담도 구멍을 막고 문을 닫는 삶의 지혜를 역설한 가르침으로 볼 수 있다.

구멍을 막고 문을 닫음으로써, 생각 감정을 쉬고 또 쉼으로써 마음을 0점 조정해 마치고 팔이 안으로 굽지 않는 지공무사한 마음을 회복했다면 고요하고 편안한 무심의 마음에도 안주함 없이, 중생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보살행을 펼치며 이웃을 제 몸처럼 돌보고 사랑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자신의 만족과 이득만을 추구하는 소아적이고 이기적인 `나'을 벗어나 지공무사한 마음에서 발해지는 반야 지혜인 성령의 빛으로 올바름이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도덕경 56장에는 “和其光(화기광) 同其塵(동기진)”이란 가르침이 있다. 화기광은 빛과 하나 된다는 뜻으로 무엇이 올바름인가를 드러내는 빛의 역할을 강조한 말이다. 동기진은 티끌 먼지와도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어리석은 중생들을 외면함 없이, 낮은 곳으로 임해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한다는 가르침이다.

구멍을 막고 문을 닫음으로써 나 없음의 무아를 깨달아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는 것이 우선이며 깨닫고 나서는 주변의 인연을 깨달음으로 인도해야 하는데 이것을 불교는 자각각타(自覺覺他) 즉, 자신이 깨닫고 타인도 깨닫게 하라는 가르침으로 강조한다. 기독교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났다면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강조한다. 유교는 대학을 통해 자신이 먼저 내면의 밝은 빛인 명덕(明德)을 밝힌 뒤, 주변의 모든 인연과 함께 하는 `親民(친민)'의 삶을 역설하고 있다. 이 모든 가르침은 빛의 밝음으로 세상을 다스림으로써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우리 한민족의 전통 사상인 `光明理世(광명이세) 弘益人間(홍익인간)'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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