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 구인사, 그리고 함께한 우리
잼버리, 구인사, 그리고 함께한 우리
  • 이기태 단양군 자치행정과 민간협력팀장
  • 승인 2023.08.2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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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이기태 단양군 자치행정과 민간협력팀장
이기태 단양군 자치행정과 민간협력팀장

 

역대급 태풍 카눈이 진로를 한반도로 틀었다는 뉴스가 들려오던 날, 단양군으로 잼버리 대원 1600명이 배정됐다는 소식도 함께 들려왔다. 남의 이야기였던 잼버리가 갑자기 우리 일이 되는 순간이었다.

일본에서 온 잼버리 대원들은 3박 4일간 구인사에 머물렀다. 갑작스레 손님을 맞다 보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한 학생이 여권을 분실했는데 수소문해 보니 그게 충남 당진시 어느 미용실에 있다는 것이었다. 분명 대회는 전북 새만금에서 열렸는데 충남 당진이라니. 공교롭게도 다음날이 구인사에서 퇴소하는 날이라 등기우편으로 받기에는 도착시각이 애매했다. 더 고민할 것 없이 당진으로 출발했다.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단양군에서 편도 200㎞, 왕복 400㎞ 거리였다. 그날은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관통하는 날이었다. 문득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3시간을 넘게 달려 당진시 면천면의 한 미용실에 도착했다. 단양에서 왔다는 말에 원장님은 고생하셨다며 아직 따뜻한 인절미 한 덩이를 내어 주신다. 사연을 들어보니 버스 기사인 남편분과 함께 버스를 청소하다가 쓰레기봉투에 들어 있는 가방을 발견하셨다고 한다. 아마 원장님의 눈썰미가 아니었다면 그 작은 가방은 찾지도 못했으리라. 그렇게 건네받은 가방에는 일본 여권과 곱게 접힌 도쿄행 비행기표가 있었다. 미야자와 타츠키' 오늘 나를 고생시킨 14살 학생의 이름이다. 구인사에 도착해서 타츠키군을 찾았다. 얼마 후 통역과 함께한 소년이 쭈뼛쭈뼛 들어온다. 통역을 통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지갑을 건네주니 연방 고맙다며 고개를 숙인다. 몇 마디 나누는 사이 처음 들어올 때 굳었던 표정은 금세 사라지고 안도의 미소가 소년의 얼굴 가득 번졌다. 이제 마음 놓고 K-POP 콘서트도 볼 수 있다며 싱글벙글한다. 오늘 하루 나의 고단함을 보상받기에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저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뜻밖의 손님을 맞이해야 했던 단양군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소백산 산기슭에 위치한 구인사는 산세가 깊어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 많다. 단양군은 즉각 통신사와 협력해 이동기지국을 설치하였고 잼버리 대원들이 도착한 8일 저녁부터 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부족한 화장실 24개소와 샤워장 65개소도 긴급히 추가 설치하였고 의료지원 부스 설치, 통역 인력 확보, 지역탐방 계획을 수립하였고 경찰서, 소방서 등과 24시간 합동 상황실을 운영했다. 관련 기관에서는 전기와 가스 점검을 실시하고 수자원공사에서는 생수 14000병을 지원해 주었다. 지역주민들은 옥수수 2000개, 사과 3000개, 복숭아 2000개를 모아 전달해 주었고 단양군자원봉사센터에서는 57명이 참여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배식봉사를 해주었다. 그야말로 민관이 합동해 너나 할 것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대원들이 떠나고 다음날인 13일 아침, 일본에 도착한 현지 인솔자에게서 대원들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애써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며 대원들 모두가 한국에 감사의 마음을 놓고 왔다고 한다. 언론에선 대회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하지만 희생, 헌신, 배려, 협력의 단양정신으로 뜻밖의 손님을 무사히 맞이한 단양군민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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