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처럼 살고지고
비누처럼 살고지고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3.08.1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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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참 고약한 세상입니다. 지구촌에 몰아닥친 기상이변이 그렇고 한국사회를 좀먹는 인성이변이 그렇습니다. 금년 여름에 한반도를 강타한 물폭탄과 찜통더위는 속된 말로 새 발의 피 입니다.

고산 상봉의 만년설과 북극과 남극의 빙산이 녹아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가 하면 알래스카에선 빙하가 홍수가 되어 인근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25도를 넘지 않던 캐나다 북부의 한 도시는 45도가 넘는 폭염으로 몸살을 앓았고, 하와이 마우이섬은 산불이 나 섬 전체가 폐허가 되는 초유의 사태가 노정되었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방종이 자초한 조물주의 회초리이자 경고입니다. 아니 재앙입니다.

사태가 이리 엄중함에도 이에 공동대처해야 할 강대국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첨단무기로 병든 지구에 염장을 지르는 자폭행위를 하고 있으니 기가 찹니다.

작금의 한국사회도 이와 같습니다. 배려와 존중, 타협과 상생이 없는 정치권의 이전투구와 묻지 마 살인 같은 사회병리현상이 공동체의 안전을 심대하게 위협하고 미래를 암울하게 해서입니다.

나만 무탈하고,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극도의 이기심과 물질만능주의가 낳은 폐해이자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자기희생 없는 사랑과 주장이, 헌신 없는 세의 확장과 부의 축적이, 염치없는 신앙과 이념이 사회전반에 만연해있으니 오호통재입니다.

각설하고 세수를 하다가 문득 닳아서 초라한 몰골이 된 비누에 눈길이 머뭅니다. 미안하고 안쓰럽기도 해 한동안 깊은 상념에 젖습니다. 바보였습니다. 날마다 비누로 세수를 하고 샤워를 하면서도 자신을 깨끗하게 해준 비누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으니 말입니다.

나를 깨끗하게 해주고도 공치사 한번 하지 않고 닳아 사라진 수많은 비누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올렸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비누처럼 살면 지구도 인간도 모두 무탈하고 아름다울 터인데 라는 깨우침과 함께.

아무튼 사람들은 자신의 위생과 청결을 위해, 타인에 대한 예의와 교제를 위해 오래전부터 비누를 애용해왔습니다.

허나 몸의 표피에 묻은 악취와 불순물을 씻어냈으나 마음과 정신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탐욕과 더러움은 씻어내진 못했지요.

비누의 한계이자 비누를 사용한 인간의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비누는 동·식물성 기름과 글리세린, 가성 소다 등이 주성분으로 물에 녹으면 거품이 일게 제조된 때를 씻어 낼 때 쓰는 물건을 이릅니다.

자신을 불태워 주위를 밝히는 초처럼 자기 살을 녹여 때 묻은 인체와 물건들을 깨끗하게 해주지요. 그게 바로 비누의 역할이자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예쁘고 향기가 좋은 비누일지라도 더러움을 없애주지 못하고 녹지 않으면 비누가 아닙니다.

사람도 그와 같습니다.

`자기희생을 통해 사회에 공헌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비누지만, 어떻게든 자기 것을 아끼려는 사람은 물에 녹지 않는 비누와 같다'고한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 메이커'의 말처럼 비누 같은 사람이 있고, 무늬만 비누인 사람이 있습니다.

비누 같은 사람이 많은 국가와 사회는 반석 위에 지은 집 같고, 무늬만 비누인 사람이 많은 국가와 사회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살이에 희생하는 삶만큼 숭고한 삶은 없습니다.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인간관계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누처럼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주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기적인 사랑을 했고, 출세를 위해 본의 아니게 남을 짓밟았고, 알게 모르게 남의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았기에 남은 생이라도 비누처럼 살다가야 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더할 나위없겠지만 적어도 신세진 배우자나 이웃들에게 만이라도 그리 살아야 합니다. 어차피 비누처럼 흔적 없이 사라질 인생살이 입니다.

하여 희생이고 사랑이고 헌신인 비누, 당신을 닮고자 하나이다.

비누처럼 살고지고.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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