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상'을 기억하십니까
`개근상'을 기억하십니까
  •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 승인 2023.08.03 16: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복지談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많이 설레면서도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방과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가지 걱정과 염려가 앞섰다. 다행히 방과 후에 아이를 돌봐 줄 믿을 만한 곳을 찾게 되었고 아이도 잘 적응해 나갔다.

1학년이 끝나갈 무렵 어느 날 “엄마, 학교에서 가족 여행 사진 가져오라는데 우린 없잖아”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바쁘다는 핑계와 마음의 여유가 없어 아이들과 여행 한번을 다녀오지 못했다. 다음날 바로 학교에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직장에 휴가도 냈다. 서둘러 경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고 사진도 열심히 찍어 아이가 가장 맘에 들어 하는 사진을 골라 학교에 가져갈 수 있었다.

방학이 아니더라도 체험학습을 신청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출석에 대한 부담 없이 체험학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행복한 기억과 다채로운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줄 수 있고 어린 시절의 이러한 기억과 경험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귀한 자산이 되리라 믿기에 체험학습은 교실 밖에서 이뤄지는 소중한 교육이라고 여겨졌다.

어린 시절엔 `개근상'이 있었다. 학년을 마칠 때마다 한 해 동안 결석 없이 성실하게 등교한 아이들에게 수여되는 개근상은 꽤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상이었으며 성실함과 같은 의미로 여겨져 중요하게 평가됐다. 어린 시절 몸이 약해 잔병치레가 많았는데 필자의 부모님은 `개근'이 곧 `성실'이었으므로 아무리 열이 펄펄 나고 아파도 반드시 학교에 가서 출석하고 조퇴하도록 했다. 야속하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지만 부모님의 이러한 노력으로 필자는 초등학교 6년 동안 딱 한 번을 제외하고 개근상을 받았다. 부모님은 졸업식 때 학업 우수로 큰 상을 받았음에도 6년 개근상을 받지 못함을 참으로 아쉬워하셨다. 하루 결석 때문에 6년 개근상을 받지 못했다고 말이다.

이런 의미의 개근상이 요즘은 사라지고 있다. 학교장 재량에 따라 체험학습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교실 안에서 행해지는 교육만이 아니라 교실 밖에서 이루어지는 체험학습도 일반화됐으니 `개근상'이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더 이상 개근상이 성실함의 대명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개근은 아이들 사이에서 체험학습도 한번 가지 못하는 `빈곤'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체험학습 본연의 취지보다는 `해외여행을 다녀왔는지, 몇 번이나 다녀왔는지, 어디로 다녀왔는지'를 척도로 아이들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게 하고 해외여행을 포함한 체험학습도 못 가는 이른바 `개근거지'라는 혐오적 표현이 생겨났다고 하니 이미 교육적 효과를 상실한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아이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삶', `경제적 이유로 차별하거나 계층화해서는 안 된다는 하는 가치', `여전히 성실은 가치 있는 덕목이라는 교육적 철학'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동의하면서도 낙관적이지 않다. 이미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점점 더 심화 되어 가고, 더 많이 계층화되었으며 계층 간 사다리조차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보여주는 삶의 행동과 가치가 바르지 않은데 아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받을 상처와 그로 인해 발생하게 될 또 다른 사회문제를 생각하니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이 든다.

어떤 사회문제를 인식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민감성이며 문제 해결을 위한 우선순위를 정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출발선이 되기 때문이다. 당장 이 문제의 개선과 해결을 위해 온 사회가 함께 노력하기를 청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