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달러에 몸을 던지는 사내
20달러에 몸을 던지는 사내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3.06.0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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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사랑의 종소리에 심장이 뛴다'는 말에 빌몬트 이스트(Belmont Estate)에 자리한 종을 사정없이 쳤다. 초록과 꽃으로 가득한 여행길이라서 그런지 팔에서 초록 잎들이 솟아나는 것 같다. 종이 자리한 언덕 입구에 시어머니 헛바닥꽃이 종소리에 놀라 한층 붉어졌다. 여행은 눈뜨고 꾸는 꿈이라고 했던가? 그래 잠시 눈 뜨고 꿈이라도 꿔보는 거다.

4계절이 여름인 섬나라, 그래나다는 초록과 꽃이 일상에 친구로 자리한다. 온화한 날씨와 평화로운 자연 속에 젊은이들은 노동보다는 낭만을 즐긴다. 신이 준 선물의 나라에서 술과 음악으로 몸을 흔드는 저 낭만이 젊은이들이 꿈꾸는 소확행일까? 그렇다면 저들은 소확행을 실천한 선구자들이란 말인가? 놀고 있는 날씨만큼이나 아깝게 느껴지는 청춘이다. 청춘들이야 무엇을 하든 말든 자연은 푸르고 싱그럽기만 하다.

강화도만 한 섬나라, 오밀조밀 모여있는 마을을 지나 아기자기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산모롱이를 굽이 돌아갈 때는 불편했던 청춘들의 낭만도 어제 일이 되어버리고 금세 춤추는 바다에 매료된다. 해변에서 언덕을 향해 달려가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살짝 내린 비로 질퍽거리는 비포장도로를 쉬지 않고 달린다. 아프리카나 남미지역에서 육상선수들이 많이 배출되는 과정인가 보다. 달리면서 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하얀 이를 드러낸다.

로드 투어 중에 가이드가 콩코드 폭포가 있다면 안내한다. 나뭇잎을 차분히 젖히는 보슬비를 맞으며 계곡을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어떤 폭포가 계곡에 있을까 궁금했다. 산길이라 길은 좁고 비에 젖은 비포장도로는 질적 걸린다. 폭포가 가까이 왔다고 하나 폭포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래나다는 영국이 버릴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육두구 때문이라고 했는데 2004년 허리케인으로 대부분 유실되고 겨우 대여섯 그루 계곡 건너편에 서 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허리케인으로 무너진 건물이 폐가로 남아있다. 가이드는 포장도로가 나오면 중국에서 깔아줬다며 자랑한다. 자국의 손으로는 자연을 헤치고 싶지 않은 주의자들인가?

5층 건물 높이만 한 폭포에서 물이 쏟아진다. 흙탕물이다. 폭포 앞 작은 천막집에서 청년들이 나무로 만든 물건 몇 개를 놓고 호객행위를 한다. 주로 나무로 만든 목걸이와 반지 같은 장식품이다. 마땅한 게 없어, 그냥 둘러만 보고 폭포 아래로 가는데 청년 한 명이 말을 걸어온다. 20달러만 주면 폭포에서 점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애원하듯 말을 건넨다. 묵인하려다가 사내가 가엾어 보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내는 젖은 바위를 원숭이처럼 잽싸게 올라간다.

정상에 오른 사내는 우리를 응시하며 휘파람을 분다. 알았다고 손을 흔들자 사내는 지그재그로 세 걸음 뛰더니 폭포 아래로 몸을 던진다. 폭포 아래는 바위가 물속 여기저기에 앉아 있다. 사내가 떨어지는 순간 마음이 아팠다. 한참 있다가 사내는 물속에서 손을 흔들며 얼굴을 드러냈다. 올라와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한다. 사진을 찍고 차에 올랐는데 사내가 준 쪽지라며 딸이 전한다. 차가 떠나려고 하자 차를 따라오며 전화하라고 체스터를 취한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이마에서 피를 흘리면 걷는 청년을 만났다. 가이드 말로는 세 명이 다이빙하는데 그중에 한 명이란다. 뛰어내리다가 바위에 머리를 부딪친 모양이다.

그래나다는 트리니다드토바고를 포함해 카리브해 바베이도스,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등 중남미에 있는 아름다운 섬나라다. 선물로 가득한 나라, 청년들의 꿈은 무엇일까? 내가 본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청년들의 시간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딸에게 찢어버리라고 준 종이에 사내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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