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역 신라 소경(小京)의 실체는?
충북지역 신라 소경(小京)의 실체는?
  • 김도연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 승인 2023.04.23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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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문화유산의 이야기
김도연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김도연 충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한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5소경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흔히 통일신라시대 지방행정제도를 9주 5소경으로 설명하는데, 이 가운데 5소경은 남원경(현 남원), 금관경(현 김해), 북원경(현 원주), 중원경(현 충주), 서원경(현 청주)을 지칭한다.

소경의 설치 이유는 수도가 한쪽에 치우친 것을 보완하고 지방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하는데, 단어 뜻 그대로 보면 작은 서울이 되므로 오늘날 광역시와 같은 고대도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경주를 가보면 엄청난 수의 신라왕릉을 비롯해 많은 유적이 발견되는 반면, 5소경에 해당하는 지역에서는 고대도시라는 위상이 무색할 만큼 옛 모습을 알기 어렵다.

이처럼 자료의 부족에도 우리 지역에서는 소경의 중요성 때문인지 중원경과 서원경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연구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특히 많은 연구자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소경성(小京城)의 위치이다.

소경에 성을 쌓았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국원소경(중원경의 이전 명칭)은 문무왕 13년(673) 9월 성을 쌓았으며 규모가 2,592보(步)라고 전한다.

그리고 서원소경은 규모를 알 수 없으나 신문왕 9년(689)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소경성의 위치는 어디일까?

규모를 알 수 있는 국원소경성의 경우 학자마다 척도(尺度)의 적용에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3~4㎞에 달하는 거대한 성곽임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와 유사한 규모의 성곽을 국원소경성으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일제강점기 기록인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기록된 봉현성지(逢峴城址)로 보거나 대림산성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명확한 고고학적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서원소경성 역시 의견이 분분하다. 소경성의 위치를 조선시대 읍성이 위치했던 청주읍성터로 추정하거나 그 배후에 있는 우암산성이나 당산토성, 또는 상당산성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각각의 견해마다 문제점을 갖고 있어 정확한 위치를 알기 어렵다.

한편 소경성의 위치 문제에서 벗어나 유적의 배치와 고지도에 남아 있는 격자형 시가지 구획의 흔적에 주목하여 도시구조를 복원하는 연구도 진행되었다.

이에 따르면 신라의 왕경에서 시행된 단계별 도시계획에 따라 도시구획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충북 지역에는 2개의 커다란 계획도시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충주와 청주지역에서는 곳곳에서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등이 확인되고 있다.

정리해보면 많은 연구로 인해 소경의 실체에 조금은 다가갈 수 있었으나 부족한 자료로 인해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역사문화자원에 관심이 점점 증가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자원들이 정비되어 관광자원이 되거나 다양한 콘텐츠로 재탄생하는 모습을 보면 연구자로서 지역 내 역사문화자원을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

혹시 땅속 깊숙한 곳에 소경의 모습을 간직한 유적이 더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 앞으로 많은 조사와 연구를 통해 충북 지역의 고대 역사를 담은 소경의 실체가 밝혀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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