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글제과, 빵보다 쫄면
쟝글제과, 빵보다 쫄면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3.04.1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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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여고시절 미팅이란 걸 해 본때가 있었다. 1980년대 그때는 대개 학생들의 미팅 장소가 제과점이었다. 남자들이 눈을 감거나 뒤로 돌아앉아 있으면 여자들은 각자 자신의 물건을 테이블 가운데에 올려놓았다. 그러면 남학생은 자신이 마음에 드는 여학생의 물건이길 바라며 집어 간다.

어떤 커플은 서로에게 호감이 가 계속 만남을 이어가기도 하지만 어떤 커플은 서로가 혹은 한쪽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제과점을 끝으로 만남은 더 이상 없었다.

나는 충주에 있는 여자상업고등학교로 통학했다. 아마도 2학년을 올라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지 싶다. 당시 나는 학교 고적대에서 테너 색소폰을 불었다. 충주에서는 가을이면 우륵문화재를 열었는데 그때마다 우리 학교 고적대가 연주를 하며 시가 행렬의 맨 앞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곤 했다. 고적대 일원이었다는 것을 소문으로 알았는지 남자들에게 나는 제법 인기가 있어 보였다. 그러니 당연히 우쭐댔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 모습이 어렴풋이 생각나 웃음이 절로 난다. 우리의 미팅 날은 토요일, 학교가 파하고 난 시간이었다. 아마도 충주 아카데미극장 근처의 제과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와 짝이 된 남학생은 쑥스러운지 제대로 얼굴도 들지 못하던 순진한 사람이었다. 그날 나는 음성으로 가는 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그 남학생과 터미널까지 걸어가며 짧은 데이트라는 걸 했다. 그날 이후 그 남학생과는 더 이상 만나지는 않았다. 사실 그 남학생이 그리 호감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과점은 당시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빵을 파는 곳이기도 했지만 청춘 남녀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1980년대 음성에도 쟝글 제과점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쟝글 제과점을 이용했던 시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였다. 아마도 쟝글 제과점이 생긴 것도 그쯤이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빵이나 떡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쟝글 제과점에서 빵을 사 먹은 기억은 없다. 하지만 쟝글제과 가게에는 자주 드나들곤 했다. 2층 건물이었던 쟝글 제과는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으나 2층에서는 쫄면을 팔았다.

내가 다니던 직장과 지근거리에 있어 가끔 점심때면 쫄면을 먹으러 가곤 했다. 쟝글 쫄면은 처음에는 매운지 잘 모르지만 먹다 보면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맵다. 오랫동안 가시지 않을 만큼 매웠지만 달콤하기도 해 다음날이면 또 먹고 싶게 만들었다. 쟝글 제과는 시간이 흐르면서 빵을 팔지 않고 피자전문점으로 변했다. 쟝글 피자클럽으로 상호도 바꾸었다. 그리고 자연히 쫄면도 팔지 않게 되었다.

쟝글 제과 쫄면은 음성고등학교 입구에 있어 학생들이 자주 이용했던 모양이다. 모르긴 몰라도 음성고등학교 학생들도 쟝글 제과에서 미팅이란 걸 꽤나 했을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음성 고등학교에 다녔던 사람인 듯, 쟝글 제과 쫄면이 그립다는 어느 사람의 글을 보았다. 쫄깃하면서 매콤하고 달콤한 쟝글 제과 쫄면, 아마도 그 어디에도 그런 맛은 없지 싶다.

그런데 쟝글 쫄면에 대한 추억을 그리워하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마음을 간파한 것일까. 지난해 한성아파트 상가에 쟝글 쫄면 가게가 들어섰다. 자연임실피자 체인점에서 곁다리 메뉴로 쟝글 쫄면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주인장은 쟝글 쫄면에 대한 명성을 익히 아는 사람인 듯하다. 그렇잖아도 그립던 맛이었다. 그 가게가 개업하고 오래되지 않아 나는 바로 쟝글 제과 쫄면 맛을 아는 오래된 친구들과 그곳을 찾았다. 물론 그 옛날 맛과 똑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쟝글 쫄면이라는 그 말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달콤하고 매운 쫄면을 추억과 함께 맛있게 먹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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