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전야 민주당
태풍전야 민주당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3.04.17 1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 1995년 6월 말 충남 00시의회. 제1회 전국동시 지방선거로 제2대 기초의원들이 선출됐는데 의장단 선거를 앞두고 금배지 소동이 벌어졌다.

모 의원 당선자가 의장에 당선될 요량으로 순금 배지를 동료 의원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양복 상의에 부착할 수 있게 제작된 이 배지는 두 돈쭝 가량의 무게로 지금 값어치로 따지면 무려 60만원을 훌쩍 넘었다. 당시 뿌려진 배지는 10여개. 소문이 돌자 언론이 이를 취재해서 보도했다. 의장 자리를 탐낸 뇌물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 지 수사 기관에서 꿈적도 하지않았다. 뇌물 수수 혐의를 받을 수 있었던 의원들이 입을 다문데다 시민단체 등에서도 고발을 하지않아 유야무야 넘어간 것이다. 수사에 나설 수 있었던 경찰은 `인지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사건을 덮고 말았다.

지방선거에서 정당 공천제가 도입되기 시작한 2006년 이전의 1~4대 지방의회 시대에는 의장단 선거 출마자들이 동료 의원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앞선 사례에서 처럼 금배지를 선물한 경우는 `양반'에 속한다. 노골적으로 돈봉투가 오갔고 접대부가 동석하는 룸살롱 향응에다 해외 골프 여행까지 뇌물로 제공됐다.

지방의회 의장단 선거에서 돈봉투가 사라진 때는 2006년 정당 공천제가 시작되면서다. 다수당에서 다선(多選) 의원을 의장으로 뽑는게 관행이 되면서 이전처럼 의장단 선거가 치열하지 않았다.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시행으로 얻게 된 유일한(?) 성과물이 `의장단 과열 선거전의 종식'이 아닌가 싶다.

#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 전북 출신 61세의 이 여성 정객이 민주당을 쑥대밭으로 만들 기세다.

개인 비리 혐의(뇌물 수수 등)로 지난해 구속 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씨의 휴대폰에서 2021년 3~4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돈봉투가 살포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녹취록에서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다. 송영길 당시 당 대표 후보의 지지세 결집을 위해 국회의원 10여명에게 300만원씩의 돈봉투가 뿌려지고, 지역당협위원장 등 40여명 등에게 총 9400만원이 `뇌물'로 전해졌다.

JTBC가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그야말로 `후안무치'에다 `가관'이다. 돈봉투를 뿌리는 것을 마치 독립군의 군자금을 마련하는 `의거'로 착각한 듯 의기양양하다.

뇌물을 만들어 준 사람에게는 `보급투쟁'을 하고 있다며 치켜세우고 윗선에 알려 칭찬받도록 하겠다는 격려도 잊지 않는다. 어떤 정신나간 의원들은 돈을 뿌리는 윤관석 의원에게 `형님, 기왕이면 우리도 주세요'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천연덕스러운 뻔뻔함'에 아연실색할 뿐이다. 이정근씨가 돈줄 역할을 한 강모씨에게 돈을 `많이 뜯어내는' 방법을 듣고 “엑기스를 전수해주네”라면서 고마워하는 기절초풍할 정황도 드러났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JTBC 보도로 사태가 불거진지 나흘만인 17일 최고위회의에서 결국 머리를 숙였다. 처음 녹취록이 공개됐을 때 정치공작 운운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민주당이 사태의 심각성과 비난 여론을 의식, 처음으로 공개 사과를 한 것이다. 더불어 의혹의 핵심 인물로 부상한 송영길 전 대표에게 조기에 귀국해 줄 것도 요청했다.

`7월 귀국'을 고집하던 송 전 대표에게 결자해지를 촉구한 셈이다. 결국 등 떠밀린 모양새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 송 전 대표. 민주당의 4월이 바야흐로 태풍전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