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되는 방미 외교
걱정되는 방미 외교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04.0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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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그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사퇴했다. 그 직전에는 대통령실 외교비서관이 교체됐고, 지난달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앞두고는 의전비서관이 물러났다. 불과 한달새, 그것도 한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중차대한 시기에 외교 라인의 핵심 참모들이 줄줄이 교체됐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꾼 셈이다. 비상한 상황이 아니고는 단행할 인사가 아니다. 국민은 이 이례적인 인사의 배경이 궁금하지만 해명은 없고 설만 난무한다. 
먼저 국가안보실의 보고 누락이 거론됐다. 백악관으로부터 블랙핑크와 레이디 가가의 합동공연 제안을 받고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아 혼선을 빗게한 과실에 책임을 물었다는 얘기다. 이를 외교 사령탑을 경질할 정도의 실수로 볼 사람은 없다. 김 실장과 김태효 1차장의 갈등설도 등장했다. 사사건건 대립해온 두 사람이 일본 방문 뒷처리 방안을 놓고 대충돌, 수습불능 수준에 이르자 대통령이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다. 후자가 설득력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하는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지 못했고, 그 대립이 조정되지 않고 장기간 지속됐다면 인사권자의 관리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해외방문은 늘 매끄럽지 못했다. 지난달 일본 방문만 해도 야당이 국정조사를 추진할 정도로 성과에 대한 평가가 상충하고 있고 후유증도 심각하다.
일본 언론에선 양국 정상이 독도와 위안부,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까지 논의했고, 나아가 윤석열 대통령이 오염수 방출과 관련해 “시간을 갖고 한국 국민을 설득하겠다”고 했다는 황당한 보도까지 터졌다. 대통령실은 부인했지만 부정의 방식은 모호하고 소극적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4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원인은 대통령실이 잘 알터이다. 방일 외교에서 얻은 미흡한 결과물이 참모간 불화와 엇박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방미를 앞둔 대한민국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 만나 블랙핑크와 레디오 가가의 공연을 즐기며 한담이나 나누고 올 처지가 아니다. 생색을 낼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간 일본 방문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북핵과 반도체 위기에 직면한 우리로서는 사력을 다해야 할 외교 일정이다. 
반도체법 지원금을 신청하는 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갑질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 상무부의 세부 지침에 따르면 해당 기업은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과 가동률, 수율 전망, 판매단가,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소재·소모품·화학약품, 인건비, 공공요금, 연구·개발 비용 등을 엑셀 파일 형태로 제출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미국의 경쟁사에 유출되면 차명타를 맞을 수 있는 영업 기밀을 미국 정부에 내놓아야 한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17억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있는 삼성전자는 영업 기밀을 속속들이 내놓아야 보조금을 주겠다는 생떼로 보답받고 있다. 중국에 투자한 공장의 생산능력을 확대하려면 5%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규제도 내걸었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한국 반도체 기업을 자국의 통제하에 두려는 미국의 무리한 요구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반도체 산업 부활에 사활을 건 미국이 우리의 요구를 쉽게 수용할 리 없다. 공정한 거래를 기대하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가 낭패를 본 대일 외교를 반면교사로 삼아 미국을 설득할 냉정하고 정교한 전략을 짜야한다.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사즉생의 각오를 다질 때다.
대통령의 해외 방문 때마다 잡음이 터지다보니 이번 미국 방문을 앞두고도 불안감을 털어놓는 국민이 적지않다. 새로 구성된 외교 사령탑이 한미 정상회담을 철저히 준비해 국익에 기여하는 결실을 얻고 외교역량에 대한 국민 불신도 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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