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3.02.1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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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사흘 후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입니다. 인터넷과 매스컴은 경쟁하듯 남녘의 유채꽃 동백꽃 산수유 매화 등 봄꽃의 개화소식을 알리고, 고목등걸 같은 내 몸에도 봄기운이 스며드니 봄이 오고 있음입니다. 아직은 겨울기세가 강하고 꽃샘추위도 남아있지만 생태계는 어느새 새봄맞이로 분주합니다.

이번 겨울은 처절하리만큼 혹독하고 가혹했습니다. 코로나와 혹한과 폭설로 민초들이 모진고초를 겪었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지속으로 인류평화와 세계경제가 휘청거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대지진이 나서 경악했고, 난방비 폭탄까지 터져 최악의 겨울이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이고 정세여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남의 일 같지 않았고, 지진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대에 살고 있어서 혹한기에 터진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대지진이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대자연의 봄은 어김없이 제 때에 다시 오는데 남북관계는 해빙은커녕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 참담하고, 6.25전쟁 때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1만5천여 명의 지원군을 파병해 구국의 큰 힘이 되어준 고마운 튀르키예 국민들이 졸지에 목숨과 삶터를 잃어 애통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애써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하는 이는 누구든 희망을 노래할 자격이 있습니다.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보란 듯이 앙상한 가지에 새순을 내는 나무처럼 희망의 꽃망울을 저마다의 가슴에 피워 올려야 합니다.



`하얀 눈 밑에서도 푸른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중략 /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키우고 있었구나'

이해인 시인의 `봄이 오는 길목에서'라는 시처럼 봄은 나를 키우는 또 하나의 어머니입니다. 아시다시피 늦겨울과 이른 봄이 동거하는 입춘에서 경칩까지 한 달여가 봄이 오는 길목이고 환절기입니다. 호사다마여서 봄이 오는 길목에는 복병과 지뢰가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생체리듬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고혈압, 심장병, 호흡기질환 등과 같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의 돌연사도 그 중 하나입니다. 날씨가 풀리면서 찾아오는 불청객 춘곤증도 그렇습니다. 식욕이 떨어지고, 온몸이 나른하고. 잠을 자도 피로감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 졸음이 쏟아지는데 나이가 들수록 기승을 부립니다.

한겨울에도 안 걸리던 감기로 몸살을 앓기도 합니다. 기온변화와 신체저항력의 저하로 인해 바이러스에 쉬 감염되어서 입니다. 알레르기성 비염, 결막염이나 천식도 이 때 재발하고 악화되기도 합니다.

각설하고 어느덧 일흔 번째 맞이하는 새봄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 서서 새삼스레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세상살이는 물질문명의 발전으로 날로 편해지고 수명도 길어졌지만 세상인심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혼탁해져 씁쓸합니다. 내 자신은 최선을 다한 삶도 아니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는데도 무탈하게 잘 살아왔다 여겨지니 요상합니다.

사소한 말과 부주의로 척진 친지들도 있고, 불의 앞에 침묵하거나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척 한 적도 있었고, 위선과 가식과 허영으로 체면치레하고 살았는데 뻔뻔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하여 이번 봄에는 척진 친지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관계를 회복하고, 불의에 앞장서 항거하지 못하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가식과 위선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생얼로 담담히 살겠나이다. 이번만큼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아닌 봄다운 봄이기를 희원하며 총총.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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