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시골살이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 승인 2023.02.1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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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오월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온 지 사년째다. 햇수로는 다섯 해다. 마당 정원 예원의 꽃과 나무, 여유당의 책이 있어 참 좋다. 시골살이는 아주 만족스럽다. 단조로운 삶과 여유로운 일상, 시간과 계절에 따라 배경을 바꾸어 주는 자연은 신이 준 선물이다.

저녁을 지나, 밤 열두 시가 되면 마을이 모두 잠든다. 예원의 지붕을 안젤라와 함께 올라간다. 자리를 깔고 누워 밤하늘의 초롱한 별을 본다. 빅뱅이 만들어낸 장구한 우주의 역사가 눈 앞에 펼쳐진다. 별과 만나는 경이와 신비는 시간을 멈춘다. 블랙홀이 만든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선 느낌이다.

하늘과 내가 하나 되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순간에 나타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다.

지난해에는 시골살이의 일상을 기록한 책 `행복살이'도 발간했다. 두 번째 `마당 정원 예원의 음악회'도 열어 이웃과 행복을 나누었다.

이렇게 시작한 시골살이는 어느새 일상의 행복살이로 자리를 잡았다.

시골의 작은 신앙터였던 백곡 공소는 우리가 이사 오기 전해에 `백곡성당'으로 독립하고 분가했다. 유럽의 아름다운 달력 그림에 나올 것 같은, 언덕 위에 지은 작고도 예쁜 성당이다. 지나가던 여행객들이 성당에 끌려 사진을 찍고 잠시 머물다 간다.

고향의 어르신들이 지켜온 신앙의 유산을 품은 성당이다. 순교자의 무덤이 있어 더 소중하다. 백곡성당 공동체에 이사 온 우리는 `젊은이'로 불린다. 젊은 사람이 왔다고 좋아하시며 마음으로 반겨 주시고 사랑해 주신다. 성당 어르신들이 보내주시는 넘치는 사랑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참 행복하다. 사랑이 지친 영혼을 위로해 준다.

노래를 좋아하는 신자들이 모여 성가대를 조직했다. 소프라노 다섯 명, 알토 두 명, 지휘자, 반주자를 합쳐 모두 아홉 명이다. 작지만 웅장하고, 단조롭지만 조화롭다. 창조주를 향한 찬미의 노래를 부를 수 있어 기쁘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미사에 전례 음악이 함께 하게 되어 공동체의 기쁨이 커진다. 가끔 청주로 좋은 음악회도 관람하러 간다. 성가대가 있어서 더 행복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즐겁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으면 기쁘다. 철학과 사유를 함께 할 사람이 있으면 축복이다. 시골살이에서 만나기 어려운 것이 사유를 함께 나눌 친구다. 이웃과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겁지만 공허할 때도 많다. 과학과 신앙, 예술과 철학을 깊이 토론할 사유의 친구가 필요하다. 운 좋게도 그런 친구를 만났다.

이웃집에 산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여유 있는 시간이면 책을 들고 여유당을 방문한다. 과학을 좋아해서 뉴턴에서 파이든까지 대화가 가능하다. 음악을 좋아해 성가대 반주를 하고 나는 지휘를 한다. 철학과 심리학을 넘어 환경과 교육까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다.

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마카롱이 곁들어지면 시간을 잊는다. 함께 사유할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생각이 같으면 나이를 떠나 좋은 친구가 된다. 시골살이에 큰 행복을 주는 베프 클라우디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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