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
엇박자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23.02.0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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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불현듯 그리웠다. 나이 숫자만큼 세월이 달려간다더니 뒤돌아보니 아쉬움을 챙길 여유도 없이 멀리 와 있었다. 누군가는 공짜로 주는 나이라 냉큼 받아먹다 나이 들었다고 하더니 나도 어느 순간 계란 두 판의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문득문득 회상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괜스레 휴대폰 가득 저장된 사진을 훑어보는 일이 일상이다. 찰나의 시선이 고정된 사진들, 야광머리띠에 흰 장갑을 끼고 댄스 하는 사진들을 보다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난해 충북문인들의 잔치인 충북문학인대회, 장기자랑 경연을 위해 우리 협회는 퇴근 후 운동장 야외무대에서 연습하기에 바빴다. 트로트를 부르면서 댄스도 율동도 아닌 것을 창작하면서 아코디언반주에 맞춰 모두가 심취했다. 지나가는 이들이 쭈뼛쭈뼛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는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우린 더 열심히 열렬히 온몸으로 답했다.

행사 당일, 야광불빛이 번쩍번쩍 빛나는 머리띠를 쓰고 흰 셔츠에 검은 넥타이, 검은 바지와 흰 장갑의 무대의상은 최고였다. 좌청룡 우백호처럼 양옆에 아코디언 연주자가 떡 하니 자리도 잡았다. 폼나게 댄스를 추면서 합창하면 일등은 따논 당상이라며 거만스럽게 입장을 했다. 요즘 아이돌그룹이 부럽지 않았다. 수없이 연습을 했으니 자신만만했다.

“짠짠 짜리라라”전주음악이 신명나게 흘러나오고 그에 따라 좌청룡의 여성 아코디언연주자 우백호의 남성 아코디언연주자의 연주는 장안을 휘감았다. 우린 열정을 다해 그간 연습했던 댄스와 노래를 관중 앞에 마음껏 기량을 발휘했다. 한껏 흥이 오른 무대와 관중들, 점점 합성을 지르며 손뼉치며 호응하는 관중들, 우린 흥에 겨워 더 열정적으로 흰 장갑 낀 손을 흔들면서 온몸을 불사르며 무대를 장악하고 마무리했다. 흘린 땀만큼 만족했다.

그런데 어째 이런 일이…. 노랫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반주 음악 따로, 아코디언 연주 따로, 노래 따로 모두가 엇박인지도 모르고 열심이었던 것이었다.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은 노래와 연주를 모두 제각기 온 힘을 다해 정열을 불태웠으니 그 모습에 관중들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박장대소 뒤로 넘어갔던 것이었다. 뒤늦게 동영상을 본 우린 쥐구멍이 어디 있느냐며 몸 둘 바를 몰랐다.

허나 그 순간 모두가 하나였다. 노래하는 이도 관중들도 모두가 엇박자 매력에 빠져 배꼽 빠지게 웃었으니 말이다. 요즘처럼 웃을 일이 없는 세상, 개그콘서트가 사람의 마음을 한군데로 몰아넣어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 것처럼, 야구나 축구경기에서 같이 응원하면서 하나가 되는 것처럼, 한 번쯤은 묻지도 따지도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듬어주는 것이 우리네 삶의 여유이지 싶다.

이따금 삶이라는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 각박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형식도 정확성도 중요하겠지만 비록 엇박이어도 모두가 흥에 겨워 번잡하고 각다분한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맛 아닐까.

우린 채우기에 바빴다. 넘치는 것이 모자람만 못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더 들어갈 수 없이 넘치고 넘쳐도 명예, 욕구, 자산 등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혈안이 돼 있지 않던가. 꽃향기는 백 리를 가고, 술 향기는 천 리를 가며,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고 한다. 그날, 충북문학인대회 장기자랑에서 배꼽 빠지게 웃었던 것처럼, 삶이 때론 엇박이어도 조금 더디 가더라도 호쾌하게 크게 웃어보는 여유와 사람의 향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두가 엇박의 여유를 터득하기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람의 향기가 가득한 날이 되길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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