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게도 물어봐 주세요
어린이에게도 물어봐 주세요
  •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 승인 2023.01.01 16: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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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심진규 진천 상신초 교사(동화작가)

 

저는 선생으로 스무 해 넘게 어린이들을 만나왔습니다.

17년 전부터 연말이 되면 힘들지만 보람 있는 결과물이 나옵니다. 한 해 동안 어린이들이 쓴 시를 모아 학급 문집을 엮어 책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 제 머릿속에는 학급 문집이 제가 어린이들에게 베푸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제목, 안에 들어갈 시, 표지 등 모두 제가 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집이 나온 후 가끔 자신이 싣고 싶지 않은 시가 들어가 있어서 속상해하는 어린이가 있었어요. 그 후로 문집을 만들 때 모든 과정을 저희 반 어린이 모두 함께합니다.

한 해 동안 자신이 쓴 시 중 문집에 싣고 싶은 시를 직접 고르도록 합니다. 남이 봐도 되는 시가 있고, 남에게 보이기 싫은 시가 있을 수 있지요.

문집의 제목이나 표지도 어린이들과 함께 정합니다. 제목은 여러 가지 후보를 놓고 낱말을 정돈해서 문집의 특징을 잘 나타낼 만한 것으로 정해요. 문집 표지는 공모전을 통해 고르는데 공모전에서 당선되지 못한 그림은 간지나 맨 뒷장에 모두 싣습니다.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도 함께하는 것이지요. 인쇄된 문집을 받는 어린이 대부분은 자신이 만든 문집이라고 여깁니다. 예전에 제가 모든 것을 정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초등학교에서 돌봄 교실 운영을 저녁 8시까지 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여기서 이 정책에 대한 제 생각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사를 보고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학생 보호자가 일해야 하니 어린이를 늦은 시간까지 돌보겠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어린이의 삶과 직접 관련이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의 입장만 있고 어린이 의견은 전혀 물어보지도, 물어볼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정작 돌봄 교실에서 지내야 하는 것은 어린이인데 말입니다.

어린이와 관련된 다양한 정책이 있지만, 그 어떤 것도 어린이의 의견은 묻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어떤 존재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저 어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요? 돌봄 교실 운영과 관련해서 어린이들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어요. 사회 시간에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해 배우는데 이와 연결해서 신문에 보도된 정책 내용을 보고 공부했습니다. 신문에 있는 모르는 낱말도 알아보고, 왜 이런 정책이 나왔는지 예상해보았습니다. 이 정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적어보고 더 나은 정책이 되기 위한 제안도 의논해봤습니다.

저희 반 어린이 대부분은 보호자와 더 오랜 시간 같이 있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도 어린이들과 비슷한 생각입니다. 보호자와 아이가 오랜 시간 떨어져 있어서 좋은 점보다 함께 있어서 좋은 점이 더 많지 않을까요? 어린이와 관련된 정책을 만드시는 분들이 어린이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일상 속에서도 어린이들에게 “~해”라고 명령투로 이야기하기보다 “뭐하고 싶어요?” 혹은 “당신 생각은 어때요?”라고 물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존중받고 자란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 어린이를 존중하며 어린이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까요? 이런 사회를 상상해보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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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곰윤자 2023-01-02 14:04:51
공감 100000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