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용 발언이 아니었길 바라며
선거용 발언이 아니었길 바라며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12.11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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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며칠 전 한 신문에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5%까지 올리고 연금 수령시기를 68세로 늦추기로 했다'는 보도가 1면 머릿기사로 올랐다. 기사의 내용을 살피기도 전에 `드디어 윤석열 정부가 시대의 난제에 손을 대기 시작했구나' 하는 기대감이 솟았다. 그 기대감은 바로 식어버렸다. 대통령실이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며 즉각 부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문에 언급된 내용은 전날 복지부와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공동 개최한 포럼에서 한 전문가가 제시한 방안에 불과했다. 가입자가 부담하는 현행 보험료율 9%를 2025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올려 2036년까지 15%로 높인다는 게 골자다. 연금을 타는 연령도 65세로 상향되는 2033년부터 5년마다 한 살씩 더 올려 2048년까지 68세로 높이자는 제안이다. 보험료는 더 걷고 지급 시기는 늦추자는 얘기다. 국민 입장에서 달가울리 없다. 역대 정권이 미래세대를 위한 절박한 과제로 연금개혁을 꼽고서도 전전긍긍하다 `폭탄 돌리기'를 거듭한 이유는 이같은 여론 때문이다.

15%- 68세 안이 국민연금 재정을 영구적으로 안정시킬 처방전도 아니다. 2057년으로 예상되는 기금 고갈 시점을 2073년까지 16년 늦출 수 있을 뿐이다. 이 안이 실행되더라도 우리는 조만간 기금 소진에 대비한 고민을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출산 기피에 따른 인구감소, 가파른 인구 고령화 등의 악재들을 감안할 때 고민의 크기는 지금보다 깊고 넓어질 수밖에 없다. 미봉책이나마 한시가 시급한 이유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이런 말을 했다가 진땀을 뺐던 적이 있다. “전두환 대통령이 5.18과 군사쿠데타만 빼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정치 잘 했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호남 분들도 꽤 있습니다”.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군부 독재자를 옹호했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전두환 정권에 피해를 본 분들에게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국민연금은 전두환 정권에서 시작됐다. 보험요율은 3%에 불과하고 소득대체율은 70%에 달하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설계로 출발했다. 지금은 보험요율 9%, 소득대체율 40%로 쪼그라들었지만 전두환 정권이 국민연금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이 시기에 의료보험이 전 국민에게로 확대되고 최저임금도 도입됐다. 윤 대통령은 유혈·철권 통치의 이런 이면을 헤아린 듯 하다. 하지만 그의 소신발언은 이번에 대통령실이 언론 보도를 부인하며 “정부는 아직 국민연금 개혁 태스크포스(TF)조차 구성하지 않았다”고 한 대목에서 무색해진 느낌이다.

당시 전두환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조금 더 이어졌다. 그는 대통령 해외순방을 수행했다가 미얀마에서 순직한 당시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 분야의 최고수들, 사심없는 사람들을 내세워야 국민에게 제대로 도움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익은 서울대 교수로 재직할 때 전두환이 삼고초려 한 끝에 경제정책 전반을 일임하겠다는 약조를 하고 영입한 인물이다. 윤 대통령의 말은 `전 대통령이 코드와 싱관없이 분야별 최고 전문가를 기용하는 실용적 인사로 국정의 내실을 키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지금 사심없는 최고 전문가들이 대통령실과 내각을 채웠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않은 것 같다.

사실 전두환은 나라살림 거덜 낼 일이라며 처음에는 국민연금에 강하게 반대했다. 수개월에 걸친 참모들의 집요한 진언에 뜻을 바꿨다. 윤 대통령은 듣기싫어할 말도 마다않으며 보스의 판단력을 일깨울 참모들이 주변에 있는 지도 돌아봤으면 좋겠다.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는 말이 우파의 표를 의식한 선거용 수사가 아니었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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