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함으로 채워가는 시간들
진정함으로 채워가는 시간들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2.11.0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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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진정한 일곱 살/허은미 글·오정택 그림/만만한책방>이란 제목의 그림책 있다.

언제부턴가 `지금의 내 나이에 맞는 나'인지를 무던히 생각하며 살아온 나였기에 `진정한'이란 단어는 내 가슴 한 켠을 콕 찌르기에 충분했다. 제목과 마주 선 나는 앞표지를 넘기지 못한 채 수십년 지난 시간을 쓰다듬어 봤다.

에릭 에릭슨은 인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을 자아의 성장이라 하며, 인간의 심리 사회성 발달을 영아기부터 노년기까지 전 생애 동안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8단계를 거쳐 발달하는 성장은 이전 단계에서 획득한 성취감이 토대가 되어 다음 단계로 발달한다는 이론이다. <진정한 일곱 살>은 그중 유년기와 아동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생아에게 엄마는 온 우주이자 생명줄이다. 주 양육자인 엄마의 지속적인 돌봄과 지지는 아이에게 불신보다 신뢰라는 긍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획득하게 한다. 이를 기반으로 유년기 동안 독립성의 시점을 발견하고 아동기 때는 독립성 단련 시기에 돌입할 용기를 갖는다. 불신보다 신뢰를 더 많이 획득하며 건강하게 유아기를 지낸 책 속 주인공은 아동기의 덕목들을 획득하려 애 쓰고 있다.

영구치가 자랄 자리를 확보하느라 생긴 앞니의 구멍을 진정한 일곱 살의 증표라 자랑스러워하고, 공룡에 심취하는 것을 일곱 살의 시류로 치부할 줄도 알고, 한 번쯤은 양보라는 것도 해 보며 으스대기도 하고, 주사기 앞에서 당당하려 애쓰며 용기를 내 보기도 하는 등 진정한 일곱 살을 위해 가열하게 보낸다.

신뢰보다 적게 획득한 불신감도 제 기능을 발휘한다. 어머니 이외의 대상을 무조건 신뢰했다간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진정한 일곱 살은 낯선 사람은 절대 따라가지 않는다며 불신의 능력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나는 주춤했다. `아니요! 왜요? 싫어요!'에 익숙하지 못했던, 불신의 능력이 미미했던 시절이 떠올라서다. 이렇듯 매 단계 덕목 중 획득하지 못한 감정도 있을 텐데, 어찌하면 좋을까?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진짜 진짜 진정한 일곱 살은 혼자 잘 수 있어야 한다며 의기양양하게 부모님께 선포한 책 속 주인공! 과연 단번에 해냈을까? `그럴 리가'다. 작가는 “괜찮아. 진정한 일곱 살이 아니면 진정한 여덟 살에 되면 되고, … 진정한 아홉 살이 안 되면 진정한 열 살이 되면 되니까”라며 `반드시'에 얽매이지 않기를 당부한다.

성인기 두 번째 단계를 밟고 있는 요즈음 나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아이들의 성장 시간은 나의 성장 시간이기도 했다. 불신의 능력을 제때에 장착하지 못한 채 지낸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아이들과 함께 습득했다. 더불어 진정한 성인기를 보내기 위해 이 시기에 획득해야 할 덕목인 `돌봄'의 효용성을 갖추려 노력하고 있다. 내 아이들과 부모님 그리고 가까운 이웃에게 행하며 내 삶의 방향성을 잡고 있다.

다시, 앞표지로 돌아가 제목을 몇 번이고 쓰다듬어 봤다. 그러다 넘긴 앞 면지 귀퉁이에 있는 `이 세상에는 하늘의 별만큼 들의 꽃만큼 수많은 일곱 살이 있어요. 하지만 진정한 일곱 살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란 글을 가슴에 새겨 넣었다. 그렇게 많지 않은 `진정한 성인기'를 보내기 위해 가열하게 시간을 꾸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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