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19.12.2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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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손으로 글씨 쓰는 것을 지독히 싫어한다. 글씨를 영 못써 펜글씨 여러 권 썼음에도 며칠 지나 예전의 글씨로 되돌아온다. 가끔은 내가 쓴 글씨도 못 알아본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나를 위해 손으로 꾹꾹 눌러 써준 편지 한 장에 매우 행복해한다. 그래서 긴 여행을 떠나는 친구에겐 어김없이 부탁을 한다. 여행지에서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는 그녀에게 나에게도 편지를 보내달라고 말이다.

그녀의 긴 여행이 기다려진다. 그 여행 속에서 나에게 전해질 엽서 한 장에 나는 설레임과 동시에 기쁨, 행복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우편물로 받는 편지는 이제 정이 깃들여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돈을 내라는 고지서 혹은 광고전단뿐이다. 그 속에 기대하지 않았거나 기다리고 있었던 편지 한 장이 있다면,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행복할 것이다.

도서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윤이상 저·남해의 봄날·2019)은 남의 편지를 훔쳐보는 것 같아 두근거린다. 이 책은 작곡가 윤이상이 파리와 독일 유학시절 아내에게 쓴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편지 끝 부분마다 적혀져 있는 나의 애인, 뽀뽀는 읽는 나를 가슴 설레게 만든다. 가끔은 돈을 부쳐달라고 부탁을 하고, 편지를 자주 보내지 않는다고 타박도 하지만 편지 속에는 음악에 대한 갈망과 가족에 대한 사랑, 걱정이 녹아나 있다.

작곡가 윤이상이 유학길에 오른 나이는 마흔 살이었다. 가족을 위해 생계를 책임지고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의 나이에 음악적 갈망과 이론적 학구열로 모든 것을 뒤로하고 유럽으로 떠난 것이다. 가족의 생계와 유학의 짐은 오롯이 그의 아내 몫이 되었다. 그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 번뇌와 아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시절 윤이상의 천재적인 능력을 알아봐 준 그의 스승들과 그의 음악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토대가 되었던 그 모든 것에 감사하다. 암혹했던 그 시절의 그의 음악이 때론 누군가의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며 우리에게도 베토벤과 같은 작곡가 한 명은 좀 가지고 있을 수 있었으니깐 말이다.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손으로 쓰는 건 영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뜬금없이 이메일이라도 보내고 싶어졌다. 그리운 당신들에게 내가 정말 당신들을 그리워하고 있으며 사랑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편지로 전해지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알게 해 준 이 책은 작곡가 윤이상의 힘들었던 삶을 알려주고 있지만, 그 시절 로맨티스트였던 그의 사랑이 무엇보다 돋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전하고 싶게 만든다. 마음이 따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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