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삶, 영원한 자유인 조르바
태양의 삶, 영원한 자유인 조르바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9.05.1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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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삶은 욕망한 만큼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스 크레타섬 정오의 해변엔 한 마리 자유로운 사자가 산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그의 삶은 바람에도 걸리지 않는 가벼운 삶이다. 유한한 삶을 무한한 자유인으로 살다간 조르바는 곧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긍정적으로 추앙하는 인물이다.

인간의 무의식적 id(이드)를 그대로 노출하고 규범으로부터 먼 원심력으로 살아가지만, 그의 중심엔 무봉(無縫)의 순수한 선성이 있다. 원석 그대로처럼 거칠고 모난 부분을 드러내지만, 가식 없는 그의 호탕함에 이끌린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것이 이 책이 던진 화두이다. 삶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순례이다.



“나는 자유를 원하는 사람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자유를 원하지 않아요. 여자도 인간일까요?”



성명 축일 잔치 참석 여부를 놓고 여인과 나눈 대화에서 조르바가 언급한 대목은 깊이 사유할 부분이다. 여자는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는 조르바식 해석이 여자들을 세속적인 가치로 묶은 것이라면 욕망의 무게가 무거운 여자들은 결코 자유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큰 그림과 작은 그림을 그리는 기준으로 성(性)을 구분한 조르바 적 사고를 수긍한다. 그러나 남성 중심의 오랜 제도와 인식이 구조화한 여자의 전형이 조금씩 수정되고 해체되는 중이니 생래적인 부분인지는 좀 더 탐구할 부분이다.

1인칭 관찰자인 ‘나’는 펜과 책을 통해 세상을 읽고 체험한 사람이다. 그가 고독 가운데 대적했던 문제를 조르바는 날몸 그대로 가볍게 풀어내고 산속의 맑은 대기까지 향유하며 살아왔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주인공 ‘나’두목처럼 어쩌면 조르바야말로 내가 무의식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일 수도 있다. 책상에 앉아 남들이 써낸 지성의 사다리를 타고 머리로 세상을 경험해 온 주인공처럼 그동안 내게도 유일한 삶의 놀이터가 책상이었다. 이제 턱 괴고 먼 산 바라보던 작은 창문을 닫고 서서히 대문 빗장을 풀어야 한다. 쇳덩이처럼 무거운 욕망을 내려놓고 세속의 어떤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가볍게 자유 할 때이다.

태양의 삶을 살다간 그리스인 조르바의 삶은 어쩌면 우리가 도달해야 할 마지막 미션인지도 모른다. 조르바의 삶은 욕망한 바가 없기에 두려울 것도 없고 그러기에 공기의 발뒤꿈치처럼 워킹해 온 삶이다. 낮 12시 정오의 주인공처럼 민낯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 단계가 황금빛 태양의 삶이다.

크레타섬은 하나의 상징적 공간이다. 창조적인 공간으로 조르바의 자유가 날개를 단 공간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들어낸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처럼 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오롯한 자유인의 삶을 살았다. 호탕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그 정신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여성 편력에 일관한 자유의 한계성을 느낀다. 그가 던진 강렬한 메시지, 여자는 정말 자유를 원하지 않는 존재일까? 아무래도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 구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도자기를 만드는데 손가락이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손가락을 절단한 조르바처럼은 아니더라도 내 노선을 방해하는 요인을 과감히 제지할 수 있을까? 나를 비롯하여 모든 인간이 인간 실존으로서의 자유를 누리는 통 큰 세상의 큰 그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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