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와 인생
탁구와 인생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03.2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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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탁구를 사랑하고 즐깁니다.

날씨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전천후 운동이고, 라켓과 운동화만 있으면 언제든 즐길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의 서민친화적인 운동이어서입니다.

거기다가 성인병과 치매예방에도 좋고, 한겨울에도 반발 티셔츠를 입고 쳐야 할 정도로 운동 효과가 커 시간이 나면 단골 탁구장에 가서 즐탁(즐기는 탁구)을 합니다.

아시다시피 탁구는 한여름과 한겨울에도 즐길 수 있는 실내운동이라는 점과 단식이든 복식이든 남녀가 함께할 수 있고, 어느 정도 내공을 쌓으면 고수하고도 할 수 있고 하수하고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하고도 늙은이하고도 어울릴 수 있어 좋습니다.

대다수 운동경기가 힘과 기량의 차이로 동성끼리 하거나, 연배가 비슷한 사람끼리 하는 데 반해 탁구는 오히려 여자라고 깔보거나 늙은이라고 얕봤다간 큰코다치는 운동입니다.

건장한 남자가 연약해 보이는 여자에게 형편없이 지기도 하고, 혈기왕성한 20대가 노쇠한 70대에게 맥없이 지기도 하니까요.

지역마다 선수출신들이 운영하는 전문 탁구장도 많고 주민자치센터나 아파트단지나 금융기관과 종교시설 등에도 탁구장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언제든지 즐길 수 있고 레슨비도 저렴해 초보자도 입문하기 쉬운 참 좋은 운동입니다.

주로 낮에는 주부들과 은퇴자들이, 밤에는 직장인과 젊은이들이 애용하는데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릴 때도 탁구를 즐길 수 있어 기특하기 그지없는 운동입니다. 테니스도 골프도 축구도 할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 보란 듯이 즐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각설하고 탁구의 진정한 매력은 다양한 기술과 빠른 경기 진행에 있습니다, 만 가지가 넘는 기술이 있고 기량의 진폭도 엄청나게 나가 큰 운동이니까요.

사람마다 서브도 다르고 내공의 깊이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과 배려를 온몸으로 가르치는 운동이지요.

가장 작고(지름 3.72~3.82cm), 가벼우며(2.40~2.53g), 가장 회전이 많고(100회/1초), 빠르며(상대 코트 도달 시간 0.2초), 입으로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가녀린 탁구공이 애간장을 녹입니다.

그 작은 탁구공이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1971년 죽의 장막이라 불렸던 중국의 문을 연 것도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 덕분이고, 1991년 일본 지바에서 남과 북이 최초로 단일팀을 구성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것 또한 탁구였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탁구는 탁구대 위에서 라켓으로 탁구공을 주고받는 운동입니다.

배울 때는 상대의 테이블로 공을 여사히 넘기는 데 주력하지만 어느 정도 숙달이 되면 상대가 공을 받지 못하도록 치는 기술을 갈고 닦습니다.

고난도 기술과 파워를 장착한 서브와 공격 볼을 상대가 못 받아넘기면 점수를 따는 그럴수록 고수로 거듭나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탁구는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 못 하듯이 고수가 되면 초자 때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초자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고수는 꼴불견일 뿐 진정한 고수가 아닙니다.

내가 못해도 재미없고 상대가 못해도 재미없는 게 탁구입니다.

아무리 좋은 탁구장이 있어도 같이 칠 상대가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하여 같이 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게 탁구이고 세상 이치이니 이겼다고 우쭐해 하지 말고 졌다고 시무룩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탁구공입니다. 연인처럼 서로 사랑하고 탁구공처럼 둥글둥글 살아야 합니다.

탁구를 잘하려면 인간관계 하듯 자세를 낮추어야 합니다.

실력보다 매너를, 승리보다 땀의 성취를 소중히 하는 그대였으면 합니다.

그런 그대와 가끔씩 탁구삼매경에 빠져보고 싶습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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