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롱뇽알, 오래된 미래를 읽다
도롱뇽알, 오래된 미래를 읽다
  • 신준수 <시인·숲해설가>
  • 승인 2016.03.15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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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데이 밥상<산골짜기 옛말>

“봄이 가까이 와 있습니다. 푸른빛을 되찾는 씀바귀와 꽃다지의 모습으로 와 있고, 회색의 나무줄기를 연두색으로 바꾸는 가지 끝 여린 줄기로 와 있습니다. ... ”



며칠 전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마침 봄바람이 살랑~ 행복모드로 부는 날이었습니다. 경칩도 지났고, 기지개를 켜는 봄의 소리가 사방에 밥물처럼 흥건합니다. 봄기운도 참.

경칩, 이 시기가 되면 한랭전선이 지나면서 천둥이 자주 치는데 천둥소리에 놀란 벌레들이 땅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고향집 뒤에는 샘이 있었습니다. 야트막한 샘은 그 심연에서 맑은 물이 무한으로 솟아나 여름 가뭄에도 늘 물이 찰랑찰랑 샘 언저리를 웃돌았습니다. 땅을 짚고 엎드려 물밑을 들여다보면 두둥실 떠 가는 구름도 보이고 산도 보이고, 예쁜 내 얼굴도 보이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진~성~아 콧날이 오똑하고 입술 윤곽이 또렷해서 입맞추고 싶던 그 애 이름을 부르면 이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곤 했습니다. 내가 고라 날을 기억 할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들이 사시사철 겹겹이 고여 있는 곳입니다.

경칩이 지나면 샘 밑으로 졸졸 물 흐르는 도랑에 도롱뇽알이 가득했습니다. 이맘쯤 동네 아저씨들은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나와 천렵을 벌였습니다. 막걸리 대접에 도롱뇽 알집을 터트려 알만 주르륵 담아 훌훌 마셨습니다. 수정처럼 맑은 알이 대접에 가득했습니다. 다람쥐 눈망울을 닮았습니다. 더러 먹어 본 아이들 말에 의하면 입속에서 포도 알갱이 같은 것이 톡톡 터진다고 했습니다.

누구는 소시지처럼 기다란 알집에 소금을 꾹꾹 찍어 후루룩 삼키고 막걸리를 한 대접 마시기도 했습니다. 술을 못 마시거나 아이들이 먹을 때는 콩고물을 묻혀 먹었습니다. 고뿔에 걸린 사람은 고춧가루를 섞어 후루룩 마셨습니다. 아이들은 천렵꾼들 언저리를 맴돌며 알을 열심히 주워다 받쳤습니다. “눈깔사탕 사먹어라“ 하며 10원, 20원을 건네기도 했는데 이런 날은 횡재한 날입니다.

할머니는 경칩에 도롱뇽알을 먹으면 팔다리 아픈 것, 속 앓이 병에 효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뱃속 회충을 없애 먹는 게 살로 갈 것이라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머리가 총명해진다고 남 동생들에게는 강제로라도 먹였습니다. 여름에는 더위를 타지 않게 해주고, 불알에 땀이 차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인 샘입니다. 만물의 생기를 담고 있는 잉태의 상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무렵 면 소재지 주막에서는 도롱뇽알을 소주잔으로 한 잔씩 판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소문이 산수유꽃처럼 마을을 덮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마을에서 뭔가 책임 있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우리가 주워 온 도롱뇽알을 어디 높으신 분 한테 선물을 한다고 주전자 가득 담아 들고나가셨습니다.

고라데이 계집아이들은 도롱뇽 알집을 팔찌처럼 손목에도 걸고, 목에도 걸치고 진종일 소꿉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햇살이 따끈한 토담 밑이라 도롱뇽 알집을 목에 걸면 섬뜩하기도 했지만 찬 기운이 좋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좋았습니다. 알을 낳고 돌멩이나 나뭇잎 밑에 숨어 있는 도롱뇽을 찾아서 동시에 도롱뇽을 풀어놓고 달리기 시합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롱뇽은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꼭 뒤로 뉴턴을 하거나 옆길로 새곤 했습니다. 몇 번을 시도하다 마음대로 말을 듣지 않으면 화가 치민 사내아이들은 논바닥으로 휙 던져 버리거나, 발로 짓이겨버렸습니다.

▲ 신준수 <시인·숲해설가>

문득 도롱뇽 알이 궁금해 지는 것입니다. 인근 논두렁 밭두렁 저수지를 살폈지만 개구리알 도롱뇽알이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을 어르신 몇 분한테 도롱뇽알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오래전 읽었던 ‘오래된 미러가 생각나는 봄 밤입니다. 무엇이 옳고, 더 낫고 지향해야 하는 것임을 알고는 있으나 되돌릴 수 없이 너무 멀리 와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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