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표절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01.27 1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 정세근

이제 한 바람이 지나갔지만 유명 소설가의 표절 문제가 한동안 회자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몇몇 안 되는 여류작가라서 더 마음이 아팠다. 작년에 북경에서 돌아오는데 중국신문에도 소개되어 안타까웠다.

제목은 ‘표절, 멈춰지지 않는 악행’이었다. 그리고는 실명도 거론하고 한국문인협회가 한국문화표절문제연구소를 만들기로 했음을 소개했다. 그녀가 ‘아마도’라고 하면서 공개 사과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그리고는 그 뒷면에는 그 전날 만난 중국학자의 말을 빌어 ‘표절은 절도’라고 주말기획기사를 실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뭐라고 할까. 문제에 밑줄을 그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냥의 화제가 아니라 빨갛게 색칠한 화제라고나 할까. 그렇게 느껴졌다. 기사는 한국의 문제를 예로 삼아 중국내의 수많은 표절 혐의 작가의 경우를 소개하고 스스로 인정한 경우가 거의 없음을 언급했다. 인터넷상에서 아직 규범이 없는 것을 이용해서 서로 옮기는 것을 걱정하고 중국문학계 내에서는 오히려 용인하고 변호하고 심지어는 장려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다.

중국어에서는 베끼어 잇기(초습抄襲) 정도로 쓰니 그게 죄가 아닌 듯이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말은 확실히 절도의 뜻이 들어가 있는 말(剽竊)로 쓰니 좀 더 강하다. 영어에서는 아예 독자적으로 개념화(plagiarism)가 되어있는 것과도 비교된다.

표절과 관련된 우리말은 많다. ‘퍼오다’, ‘베끼다’, ‘옮겨오다’ 등등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그것이 절도행위라면 ‘훔치다’라고 명확히 말해야 할 텐데 마치 물을 퍼오고, 명필의 글씨를 베껴 쓰고, 저기 있는 것을 이리로 옮겨온 것에 불과한 것처럼 말하면서 문제가 벌어진다.

세상 아래 새 것이 어디 있겠느냐. 이것이 동양적 대범함이긴 하다. 철학적인 판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함께 한다는 정신이 과연 나쁠까 하는 원초적인 질문도 가능하긴 하다.

실례로 카피 라이트(right)가 아닌 레프트(left)를 주장하는 소프트웨어 공짜로 쓰기 운동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해커가 아닌 크래커라고 부르면서 차별화한다. 리누스 토발즈가 만든 컴퓨터의 정신은 곧 공유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딴 리눅스라는 운영체계(O.S.: Operating System)는 ‘딴 사람이 쓰는 것을 막는 것만 말고 다 된다’는 철칙으로 개방되고 있다. 내식으로 말하자면 인류의 공영을 위해 사용하는 컴퓨터가 특정 기업이나 개인의 이익에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밌게는 우리가 세종대왕께서 어여삐 여겨 만들어주신 한글을 쓰면서 돈을 내지 않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한다.

표절로 지적되는 까닭은 누구의 어디에서 베꼈다고 말하지 않는 데 있다. 그러면서 자기 것인 양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거짓에 해당되기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체계가 초중등교육을 통해 이런 것을 당연시하기 때문에 대학생이 되어도 아무 생각 없이 베끼는 경우가 많다. 정답을 쓰면 된다는 식이다. 나의 정답이 어디 있고 남의 정답이 어디 있냐는 투정인데 대학부터는 내가 얻은 정답은 그냥 쓰고 남이 수고해서 얻은 정답은 인용해야 하는 것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대학원부터는 선수들끼리 하는 놀이라서 베끼면 그야말로 규칙위반이자 범죄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데도 가끔씩 탈이 나기도 한다. 중범죄는 파울로 끝나지 않고 퇴장이다. 사실 표절의 가장 큰 문제는 드러나지 않게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이다.

중국의 샤오미는 베껴도 너무 잘 베껴서 사랑을 받는데 학문도 그런 게 가능한 분야가 있으면 좋겠다. 짝퉁철학!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