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범 <시인>
지나간 것은 모두 그립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지나간 모든 것이 그리울지는 의문입니다. 좋았던 일도 있었고 견디기 벅찬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실연의 가슴 아픈 고통,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 어디에서도 위로 받을 수 없는 상황,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해 주는 것은 결국 시간의 몫이고 거기에 망각(妄覺)이라는 두뇌 활동의 정지를 통해 쓰라린 상처들은 조금씩 아물어 갑니다.
그리고 그럭저럭 세월이 흐릅니다. 아주 나중에 ‘내가 그 때 겪었던 것 중에~’라면서 추억처럼 이야기 하겠지요. 그리고 그때의 상처는 흔적만 남기고 아련한 그리움만 쌓입니다. 그 때 뱉은 말 ‘지나간 것은 모두 그립다’였을 것입니다. 지나간 것이 그립다는 말은 때론 사실이 아닙니다. 견디고 견뎌낸 뒤에 어쩔 수 없이 뱉어내는 탄식 같은 그런 것일지 모릅니다.
복고(復古)와 향수(鄕愁)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지난 간 것이 그리워지면 그것은 향수일 것이고 그냥 어쩔 수 없이 돌아 갈 수 밖에 없다면 복고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의 현재의 모습은 향수가 아니라 복고의 모습임에 분명합니다.
어제 버스 정류장 옆 가판대에서 낱개비로 파는 담배를 봤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팔았던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때는 한 가치에 5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어제 본 ‘까치 담배’는 300원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늙거나 젊었거나를 불문하고 드믄드믄 사서 피우는 사람들이 눈에 보입니다.
서민들의 팍팍한 삶은 돌보지 않는 가혹한 가렴주구(苛斂誅求)의 알몸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오래 전에 보았던 것이라 익숙하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했습니다. 봉지쌀을 사먹던 시절의 모습이었는데 명색이 G20에 들었다는 지금도 저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서글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점점 좋아지는 모습이 되어야 너남없이 세상은 살만하다는 소리가 나올 텐데 점점 그런 소리는 죽고 이제 ‘복고’(復古)의 바람이 광풍처럼 삶을 휘젓고 다닙니다.
가판대에서 ‘까치담배’를 한 가치 사서 피워 물었습니다. 살아온 과거가 내게는 복고였을까 향수였을까를 생각합니다. 지나고 봐도 향수(鄕愁)보다는 복고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앞으로의 삶은 어떨까 싶습니다. 순간순간은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했지만 지나고 보면 흠집처럼 온 몸에 상처투성이의 흔적만 남았습니다.
우리네 필부의 삶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시난고난 살아왔어도 결국 남는 것이라고는 가차없이 찢어진 상처만 남은 삶. 그 상처를 보면서 세뇌처럼 되뇌입니다. ‘그래 그래도 그 때가 좋았어. 지난 것은 다 아름다운 거야’라는 서글픈 자기 위안. 지나간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덮었던 망각의 시간. 우리는 그것을 향수라 부르지만 사실은 복고였다는 사실.
모쪼록 우리네 삶에 향수(鄕愁)가 가득 찰 수 있는 그런 묘약이 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