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하지만 정성 다한 엄마표 밥상… 추억의 별미 맛 볼까
투박하지만 정성 다한 엄마표 밥상… 추억의 별미 맛 볼까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4.09.04 1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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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특집 - 고향의 맛
박나물
푸릇하니 덜 여문 박 가늘게 채썰어 달달 볶아
커다란 대접에 비벼먹던 특별식… 아삭함 여운

기정떡
집집이 특색있는 무늬로 만들어 눈·입 즐겁게
쌀가루 술반죽에 맨드라미꽃·씨앗 고명 사용

배추 지짐
달큰한 가을배추 소금에 절여 살짝 밀가루 올려
노릇하게 구워 쭉쭉 찢어먹던 담백한 고향의 맛



영감아 땡감아 집잘 보소

보리 방아 품팔아 개떡 쪘지

개떡을 쪘으면 적게나 쪘나

네 꼭지 시루로 하나를 쪘네

개떡을 찌어서 집에 와보니

영감에 코에서 찬바람 난다.

청주시 남일면에 전해내려오는 충북의 민요 ‘개떡노래’이다. 서민들이 즐겨 먹었던 개떡은 밀 방아 찧을 때 나온 겉껍질로 떡을 만든 것으로 여자들이 베를 짜거나 들일 할 때 배고픔을 달래가며 불렀던 노래다.

세월이 지나 경제적으로 풍요해지면서 먹을거리를 걱정하는 시대는 지났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할머니와 어머니가 정성으로 만들어주시던 투박한 토속음식이 그립다. 담박하면서도 정성을 다해 차린 어머니의 소박한 밥상. 올 추석에는 추억의 별미를 맛볼 수 있을까.

◇ 초가지붕 위 둥근 박으로 만든 아삭한 박나물

아삭아삭 씹히는 소리가 먼저 군침을 돌게 하는 음식이 있다. 초가지붕 위에서 자란 둥근 박으로 만든 박나물이다. 어린 시절 행랑채 초가지붕에 푸릇한 박이 열리면 할머니는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셨다. 박을 점지하기 위한 할머니만의 가을의례였다.

봄부터 정성들여 키운 박이지만 자란 모양이 다 제각각이다 보니 할머니는 살림살이에 보태 쓸 박과 제사상에 올릴 것, 손자들의 찬거리로 사용할 것을 그렇게 직접 고르셨다.

두 팔로 안아야 할 만큼 크게 자란 박은 쌀을 푸는 뒤주바가지로 남겨두고, 양손에 쏙 들어오게 잘 자란 박은 물 항아리용 물바가지로 남겨두었다. 살림살이에 쓰일 박이 골라지면 남아있는 박들은 다시 제사지낼 것과 밑반찬으로 먹을 것으로 구분해 눈에 담아두셨다.

그렇게 점지 된 박들은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고 추석이 다가오면 할머니의 여문 손끝에 올려져 행랑채로, 쌀광으로, 부엌으로 옮겨지곤 했다. 그중에서 푸릇하니 덜 여문 박은 손자 손녀들을 위한 별미로 만들어져 저녁 밥상에 올라왔다. 껍질을 깎고 씨가 박힌 속을 뺀 뒤 가늘게 채를 썬 박은 기름에 달달 볶다 양념을 넣고 한소큼 익혀 밥상에 올리면 소박하지만 시골 밥상의 특별식이 되었다.

커다란 대접에 하얗게 볶은 박나물을 넣고 비벼먹던 그날의 저녁밥은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아삭 대며 군침을 돌게 한다.

◇ 맨드라미 꽃을 얹은 술떡-기정떡

일명 술떡, 증편이라고 부르는 기정떡도 대표적인 토속음식 중 하나다. 옛 요리책인 ‘음식디미방’과‘규합총서’에도 언급될 만큼 전통을 자랑하는 기정떡은 집집이 특색있는 무늬로 만들어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었던 음식이다.

단양 영월이 고향인 어머니는 맨드라미꽃과 씨앗을 고명으로 사용한 기정떡을 만들어 남다른 미각을 보여주셨다. 가을 기정떡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는 장독대 옆에 봉숭아꽃 사이로 맨드라미꽃을 심어두셨다. 맨드라미꽃이 붉어질 즈음 가을볕도 따가워졌다.

추석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더 분주해졌다. 대식구들이 먹을 음식준비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등장하는 어머니의 술떡은 아련한 기억 속의 음식이다.

어머니는 막걸리와 물을 반반 섞어 반죽한 쌀가루에 당원과 소금으로 간을 했다. 되직하게 만든 술 반죽에 이스트를 넣고 뚜껑을 덮은 뒤 이불로 꽁꽁 싸매 하루 동안 윗목에 두었다. 이따금 새벽잠을 떨치고 부풀어 오른 반죽을 저어주시곤 했던 어머니는 장독대에 심은 붉은 맨드라미꽃을 가늘게 찢어 대추와 밤과 같이 쟁반에 담아두셨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시던 어머니는 고명이 준비되면 채반에 보자기를 올리고 숙성된 술떡 반죽을 한 숟가락 떠 동글납작하게 모양을 냈다. 봉곳한 술떡 위에 맨드라미꽃과 검은 씨앗을 고명으로 올려 솥에 넣으면 폴폴 술 익는 냄새가 집안 가득 구수하게 물들였다.

◇ 손으로 찢어 먹는 달큰한 가을배추 지짐

달큰한 가을배추를 소금에 절여 살짝 밀가루만 올린 배추 지짐은 시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대표 명절 음식이다. 지글거리는 프라이팬에 즉석으로 구운 노릇한 배추 지짐을 손으로 쭉쭉 찢어가며 간장에 찍어 먹으면 담백하면서도 깊은맛이 고향의 맛으로 다가온다.

비록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 후에야 맛을 알게 되었지만, 도시에서만 살다 시골로 시집가 가장 난감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시어머니 표 배추 지짐이였다. 김치 부침개도 아니고 색깔 없이 허연 배추 지짐은 도대체 정체도 모르겠고, 무슨 맛인지는 더더욱 모르겠는 정체불명의 음식일 뿐이었다.

하지만, 시어머님은 명절 때마다 채반 가득 배추 지짐을 만들어 놓고는 자식이 한놈 한놈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프라이팬에 올려 따끈하게 먹이곤 하셨다. 장성한 아들들이지만 배추지짐 하나도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하셨던 어머니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내 자식들에게 그 맛을 보여주려 맛나고 맛난 가을배추를 골라 지짐을 해줘 보지만 시어머니의 배추 지짐 맛은 따라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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