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군과 상주시
영동군과 상주시
  • 권혁두 국장<영동>
  • 승인 2011.11.2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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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전국의 곶감 농가들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 겨울철 이상고온으로 타래에 매달아 말리던 곶감들이 물러서 떨어지고, 용케 붙어 있는 곶감에도 곰팡이가 확산돼 상품성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감값이 급등하며 생산비 부담이 늘어나 고민에 빠졌던 곶감농들이다. 엎친 데 덥친 격으로 건조 중인 곶감들까지 속을 썩이니 그야말로 죽을 노릇이다. 중소농은 수천만원, 대농은 수억원씩을 날리게 됐다는 푸념이 터져나오고 있다.

지난 16일 하영효 산림청 차장이 경북 상주시를 방문해 곶감 피해농가 실태조사를 벌였다. 하 차장은 피해농가를 둘러보고 농업인 간담회를 주재하며 지원방안을 협의했다. 그러나 이들은 상주시에서 지척인 곶감 주산지이면서, 이번에 똑같은 고온피해를 입고 있는 영동군은 찾지 않았다.

산림청이 차장과 기획조정관을 상주에 보내 피해조사와 대책마련에 나선 것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항의 때문이다. 12일 상주에 내려와 피해농가를 찾은 이 의원은 곶감 피해가 심각한데도 주무기관인 산림청이 뒷짐만 지고 있다며 이돈구 산림청장에게 강력 항의했고, 이에 따라 산림청이 부랴부랴 실태조사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차량으로 40분 거리에 불과한 영동군은 이날 산림청의 현지조사에서 배제됐다.

곶감은 포도와 함께 영동을 대표하는 작목이자 주요 수입원이다. 800여 농가가 한 해 2500톤(65만4000접)의 곶감을 말린다. 지난해 곶감에서만 350억여원의 수입이 발생했다. 곶감농이 낭패를 겪으면 지역경제에도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대응이 없다. 곶감농들 사이에서는 최소 30% 이상이 피해를 봤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으나, 이렇다 할 피해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이나 군수가 피해농가를 찾아 위로했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그나마 부군수가 군수 외유시 현장을 돌아보고 담당부서에 대책을 주문했다는 것이 전부다.

영동군은 피해가 대수롭지 않다고 강변한다. 피해가 예년 수준인 데다 곶감을 대량으로 취급하는 대농들은 무사하고 중소농들이 주로 피해를 겪어 전체 매출에선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래서 국회의원에게 보고하고 도움을 요청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것이다. 곶감농들이 피해를 부풀리며 엄살을 떨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공무원과 국회의원이 그동안 눈과 귀를 닫고 다녔다는 얘기가 된다.

대농들 피해가 적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도 귀를 의심케 한다. 자본력이 튼실한 대농보다 융자나 소자본으로 버티는 생계형 중소농의 피해에 주목하는 것이 서민경제를 지향하는 공직의 도리요 기본이다. 이러니 영세농의 피해를 쉬쉬함으로써 대농들을 배려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 아닌가.

군은 산림청이 상주시 피해조사에 나서고 지원책을 마련키로 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에야 정부 지원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해 달라며 충북도에 피해 내역을 보고했다고 한다. 이달 초부터 시장이 농가를 순회하며 피해를 확인하고 국회의원과 공조해 정부에 보상방안을 다그친 상주시와는 딴판이다. 환기시설이 떨어지는 하우스에서 주로 곶감을 건조하는 상주시가 영동군보다 피해 규모가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상주시에 비해 취약한 경제 기반을 감안할 때 지역에 미칠 타격은 더 심각할 수도 있다. 더욱이 대부분 피해농들이 서민인 중소농들이다. 단체장이 한가하게 외유나 챙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산림청이 국회의원까지 나서 대책을 채근하는 상주시와 먼 산만 쳐다보고 있다가 옆집의 아우성에 슬그머니 끼어든 영동군을 같은 잣대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곶감은 가공품이라 천재지변으로 피해를 보더라도 농산물처럼 법적 보상이 블가능하다. 결국 산림청이 시설 및 사업비 지원 등을 통해 간접 보상에 나설 공산이 높다. 지역의 민생을 아랑곳 않는 영동식의 정치와 행정으로는 정부가 지원에 나서더라도 찬밥을 먹기 십상이다. 울지도 않는 아이가 젖을 차지할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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