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와 군중(群衆)의 정치학
세종시와 군중(群衆)의 정치학
  • 충청타임즈
  • 승인 2010.02.08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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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덕현 <본보 편집인>
지난 4일 열린 세종시 원주민들의 수정안 찬성 집회가 여야 정쟁에 또 하나의 빌미를 제공했다. 지금으로선 당시 참석자의 절대다수가 외지로부터 동원됐다는 의혹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날의 집회소식을 언론을 통해 1보로 전해들은 순간부터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현재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그 정도의 사람, 특히 원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수정안 찬성을 외쳤다는 사실이 쉽게 와 닿지가 않았다.

때문에 의혹에 대한 공식적인 언론보도가 나가기 훨씬 이전부터 여기저기서 확인소동이 벌어졌음이 확인되고 있다. 민심은 이렇듯 냉정함을 잃지 않는데도 저쪽(?)은 여전히 너무 쉽게, 그리고 만만하게만 보는 것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들의 조바심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될 일도 안 된다. 세종시의 운명을 국민투표로 판가름하자는 주장은 아예 할 말마저 잊게 한다. 그렇다면 세종시 얘기가 처음 나온 참여정부부터 지금까지 이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모조리 직무유기 내지 대국민 사기혐의로 처벌해야 할 판이다.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다는 지금, 정작 안에선 이런 후진국적 행태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수정안에 대한 충청권의 여론호전은 사람을 동원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군중을 동원해 세를 과시하고 이를 정치나 통치의 발판으로 삼으려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1956년 5월 2일 신익희가 한강 백사장으로 30만명을 불러 모아 연설한 것이 군중정치의 종언을 예고했다면 1987년 11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이 여의도를 놓고 벌인 100만명 동원경쟁은 군중정치에 사망선고를 내린 거나 다름없다. 그것도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말이다. 한 번은 대통령후보, 또 한 번은 민주화의 급사(急死)라는 재앙만 남겼지 않은가.

4일의 연기군 집회가 꼭 이때의 망령을 일깨우는 것같아 영 찝찝하기만 하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세종시를 만들겠다는 이면에서 이처럼 20, 50여년 전의 구태가 벌어진다면 오히려 괴리감만 키울 뿐이다.

정부의 그 엄청난 물량공세에도 불구 수정안에 대한 여론호전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못 거두고 있으니 이젠 답을 알 때도 되었다. 굳이 한 가지 힌트를 준다면 이건 자존심 문제다. 지금 많은 충청인들이 사석에서 토로하는 내용들을 보더라도 그렇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정부부처가 아니라 서울을 몽땅 세종시로 옮긴다고 하더라도 원안을 사수하겠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이것을 도외시한 채 너도 나도 충청도로 달려 와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고를 나열해 봤자 결코 감동을 주지 못한다. 명분 없이 시작된 일은 그 어떤 다른 명분을 들이대더라도 절대로 사안의 '원형질' 회복이 쉽지 않다. 그래서 정치엔 이의 간극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적어도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선 처음부터 이것조차 무시됐다.

이는 청주 청원 통합 문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뒤늦게 도지사가 촉구하고 장관까지 나서 닦달하고 있지만 여전히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다. 냉정히 말해 이 역시 명분없긴 마찬가지다. 만약 도지사가 통합논란 초기부터 지금처럼 처신했다면 통합은 이미 성사되고도 남았다. 통합이 대세인데도 정치적 계리(計理)로 이를 외면한 결과가 작금의 혼란스러움을 초래했다면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진정 통합을 위해선 도지사와 청주시장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아니 좀 더 차원있는 대국적 판단이나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시중의 여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그 해법을 모른다면 지금 당장 위장이라도 해서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날 것을 주문한다. 옛날엔 통치자들도 이런 방법을 종종 구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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